덕질하는 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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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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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뮤지컬 적벽

관운장 위주 망상글.


[적벽] 선생. 부디.

삼고초려


힘과 무예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 있다. 운장이 그것을 깨달은 것은 거듭되는 패배와 실패에 절망을 배울 즈음이었다. 운장과 익덕, 자룡. 그들은 말 한필과 창 한 자루만 있다면 백만대군이 두렵지 않은 만인지적의 장수들이었으나, 그들의 주군 현덕은 그 무엇도 이루지 못한 채 패전을 거듭할 뿐이었다.

조조 따위야 무서울 것이 뭐 있소? 조조가 아니라 조조 할애비가 온다 해도 소제가 다 물리칠 것이니, 중형은 걱정인들 마시오.”

익덕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 만만하게 가슴을 팡팡 두드렸고, 현덕은 그런 익덕이 든든하다며 부드럽게 웃고 말 뿐이었다. 그러나 운장은 조조가 아니라 조인 따위가 쳐들어올 때조차 마음껏 싸우지 못하고 상황을 살피며 몸을 사려야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다.

그렇기에 운장은 서서의 능력과 책략에 감탄했으며, 서서가 떠나며 천거한 공명이란 자가 절실했다. 천하의 불쌍한 억조창생들을 가슴에 품은 현덕만큼이야 절절하겠느냐마는, 그런 현덕의 꿈이 더 이상 좌절하거나 짓밟히는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운장에게는 공명이 필요했다.

얼굴도 모르는 이를 모시고자 현덕이 세 번이나 직접 발걸음을 하는 것은 운장에게도 달가운 일일 수 없었다. 운장에게 하늘 아래 진정한 영웅은 오직 현덕뿐이었다. 그러나 운장은 내색하지 않았다. 매번 불만 가득한 얼굴로 투덜거리고 씨근거리는 익덕을 달랠 뿐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아주 어렵게 만난 공명은, 꼭 신선 같은 사람이었다.

낭설을 듣고 허행하였나이다.”

현덕을 거절하는 공명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운장의 눈은 언제나 현덕을 쫓고 있었다. 그렇기에 운장은, 공명을 처음으로 눈에 담은 순간의 현덕을 보았다. 언제나 부드럽고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으나 차마 완전히 지워내진 못했던 깊은 수심이 물러나고, 무겁고 두터운 구름 사이로 햇살이 스며 나오듯 환해지는 현덕의 표정을 보고야 말았던 것이다.

형님에겐 이 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뇌리를 스친 그 생각을 자각하였을 때, 운장은 이미 공명의 앞을 막아선 뒤였다.

공명이 운장을 올려다본다. 운장은 평생 기치창검을 높이 들고 수천 군사를 호령해온 장수들도, 자신의 앞에 서면 움츠러드는 것을 왕왕 보아왔다. 그러나 공명은 똑바로 운장의 눈을 마주보았다. 당장이라도 자신의 목을 한 손으로 꺾어버릴 수도 있을 만인지적의 장수 앞에서도, 전혀 두려움 없는 당당한 눈빛이었다.

익덕의 말대로다. 밭이나 조금 갈아보았을까, 평생 죽간보다 무거운 것은 들어본 적도 없을 듯한 백면서생이니, 여기서 자신이나 익덕이 공명을 묶어 강제로 신야로 끌고 간다 한들 제대로 반항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운장은 무릎을 꿇었다. 자신의 행동에 익덕이 당황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나, 운장은 그대로 공명에게 고개마저 숙여버렸다. 뒷덜미로 냉정한 시선이 차분하게 쏟아졌다. 잠시 자신을 그렇게 내려다보던 공명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자신을 지나쳐갔다.

운장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익덕 역시 공명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공명은 무심한 바람처럼 표표히 익덕마저 지나쳤다.

결국 현덕이 다시 공명을 불렀다. 공명에게 도움을 청하고, 고통 받는 민초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현덕의 목소리는 애간장이 끊어질 듯 애절하고 절실했다. 현덕의 울음을 들으며 운장은 몇 번이고 청했다. 감히 현덕을 앞질러 입 밖으로 말을 뱉지는 않았으나, 공명이라면 분명히 알아들을 것이다. 그런 이유모를 확신을 가진 채, 운장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선생. 부디.

AND

[자룡공명] 제갈부인전 2

 

 “조 장군! 조 장군!”


 급히 말을 달리던 조운은 애타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급히 고삐를 당겼다. 아이를 안은 미부인이 하인 한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조운은 말에서 뛰어내렸다. 감부인을 장판교까지 모셨던 말은 이미 지쳐있었다.


 “부인, 괜찮으십니까?”

 “저는, 저는 괜찮습니다만, 군사가..”


 미부인은 말을 맺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조운을 만나니 긴장이 풀리고 안심이 된 탓이다. 그러나 조운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군사께 무슨 일이 있습니까? 군사는, 군사는 지금 어디 계십니까?”

 “군사는 스스로 미끼가 되어 나와 다른 방향으로 도망쳤습니다. 나와 아두를 안전하게 피신시키려고.. 장군, 어서 가서 군사를 구해주세요. 군사가 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가졌다 한들, 결국 여인의 몸이 아닙니까. 또한 우악스런 병사들에게 이치와 논리가 통할 리가 있겠습니까.”


 조운은 다른 병사가 타고 있던 말의 고삐를 넘겨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지치지 않은 갈색 말이었다.


 “부인께선 제 말을 타고 어서 주공의 곁으로 가십시오. 저는 군사를 구해 함께 돌아가겠습니다.”


 예를 갖추고 인사를 길게 올릴 시간마저 아까웠다. 조운은 다급한 마음을 애써 가다듬으며 고삐를 강하게 바투 쥐었다.


**

 

 “...”


 제갈량은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애써 억눌렀다. 병사들의 우악스런 손길이 그녀의 팔과 머리채를 마구잡이로 붙잡고 끌어냈다. 이리저리 숨고 달아나며 한 떼의 병사들을 유인하는 일은 애초에 그녀에게 무리였다. 젖 먹던 힘까지 짜냈던 몸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삐걱거렸고, 가슴속엔 불덩이가 들어찬 듯 뜨겁고 아팠다.

 다급히 도망치던 제갈량은 버려진 듯 보이는 창고를 찾아냈고, 그 구석에서 썩어가고 있던 짚더미 속으로 몸을 숨겼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병사 하나가 마구잡이로 내지른 창에 허벅지 부근을 찔렸다. 병사들은 킬킬 웃으며 제갈량을 끌어냈고, 반항할 기운조차 소진한 그녀를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땅에 붉은 핏자국이 남았다.

 창고 밖으로 끌려 나온 제갈량은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의 무너져가는 돌담 옆의 작은 우물이 보였다. 저 안에 물이 남아있을까. 제갈량은 그런 생각을 했다.

 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직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유비가 새로 얻은 군사 제갈량이 여인이라는 소문은 들어보았을지도 모르겠으나, 일개 병사들까지 자신의 생김새를 알 리 없었다. 다만 저들은 포식자의 심정으로, 눈앞에서 도망치는 먹잇감을 쫓아 무작정 달려왔을 뿐이었다. 약한 여인과 아이들은 사냥놀이의 장난감으로 안성맞춤일 것이다.

 반항의 기색이 없자, 머리채를 단단히 움켜쥐고 있던 손이 떨어져나갔다. 제갈량은 제 팔을 움켜쥔 사내의 커다란 손을 보았다. 이들은 당장은 자신을 죽일 생각은 없어보였다.

 저들의 주인인 조조가 색을 밝히는 것은 삼척동자도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그녀의 얼굴이 반반한 것과, 그녀가 걸친 새하얀 옷이 제법 비싸 보인다는 이유로 사로잡은 그녀를 그들의 주인에게 진상하러 가는 것일지도 몰랐다. 혹은 저들끼리 취하려는 것인지도, 아니면 다른 장소로 끌고가 죽이려는 것인지도 몰랐다.

 차라리 죽여 버리면 다행이겠건만. 제갈량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는 결코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대로 사로잡혀 조조를 대면하는 것은 더욱 안 될 말이었다.

 조조는 상황판단이 빠른 자다. 만일 제갈량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그녀는 그 즉시 포로가 아닌 인질이 될 것이다. 그리고 유비에겐 결코 유리할리 없는 거래의 패로서 제시될 것이다. 만일 그러한 상황이 온다면, 유비는 제갈량을 단호히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 답은 말할 것도 없었다.

 차라리 우물로 뛰어내리자. 제갈량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운이 좋다면 즉사할 것이고, 실패하더라도 성난 병사들의 칼에 숨이 끊어질 것이다. 만일 저 우물 밑에 아직 물이 남아있다면, 익사하거나 위에서 던지는 돌에 맞아 죽거나, 둘 중 하나일 테지. 어쨌든 자신으로 인해 유비의 세력이 괴멸당하는 지경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다.


 “으악!”


 제갈량은 제 팔을 붙잡은 병사의 손을 물어뜯었다. 병사가 고통에 제갈량을 뿌리치자, 그녀는 땅바닥을 구르듯 기어 우물을 향해 달려갔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낸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날랜 병사들은 그런 그녀를 두고만 보지 않았다. 병사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풀어헤친 머리채가 걸림돌이 되었다. 우물과 가장 가까이 서있던 병사가 그녀의 머리채를 낚아채었다. 제갈량은 그대로 넘어져버렸다. 가벼운 몸은 흙먼지를 일으키지도 못했다.


 “이 미친년이..”


 그녀에게 손을 물린 병사가 씩씩대며 다가와 칼을 뽑았다. 제갈량은 몸을 웅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때였다.


 “감히 누구를 핍박하느냐!”


 벽력같은 고함이 터지고, 그들을 향해 황급히 달려오는 말발굽소리가 들렸다. 병사들이 당황하여 수런거릴 틈도 없이,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허공을 가른 창이 무언가를 무수며 꿰뚫는 소리는 비명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제갈량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그녀를 향해 달려오는 것은 틀림없는 조운이었다. 병사들이 허둥대는 동안, 조운은 시체에 꽂힌 창을 뽑아들어 제갈량을 에워싼 병사들을 도륙했다. 살이 찢기고 피가 튀었다. 다리에서 흘러나온 피로 서서히 젖어 들어가던 제갈량의 흰 옷에, 타인의 피가 함빡 덧씌워졌다.


 “, ..”

 “군사! 괜찮으십니까?”


 조운은 급히 말에서 뛰어내리며 제갈량을 불렀다. 제갈량은 문득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긴장이 풀리니 눈물이 나오려했다. 그러나 제갈량은 애써 참아냈다. 아직은 마음을 놓아서는 안됐다.


 “부인과 작은 주공께선 어찌되셨습니까?”

 “두 분 모두 무사하십니다. 지금쯤 주공의 곁에 다다르셨을 것입니다. 저는 군사를 모셔가기 위해 왔습니다.”

 “그럼 되었습니다. 저는 이미 다리를 심하게 다쳐 움직일 수 없으니, 장군만이라도 어서 주공께 돌아가세요. 조조의 병사들이 개미떼처럼 많다하나, 장군의 무예라면 능히 뚫고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순 없습니다, 군사. 말에 오르십시오. 제가 길을 내어보겠습니다.”


 조운의 말에 제갈량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각오를 굳힌 단호한 얼굴이었다.


 “보십시오. 저는 이미 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는 지경입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거느린 채, 어찌 수십만 대군의 포위를 뚫고 빠져나가려 하십니까?

 저는 이미 장군이 오시기 전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저 우물로 뛰어내리려 마음을 먹었습니다. 조조가 저를 사로잡아 인질로 쓰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정 마음이 불편하시거든, 제가 뛰어내린 뒤 돌담을 무너트려 우물을 막아주십시오. 저들이 제 시체를 가져가지 못하게만 해주셔도 이 량은 장군의 은혜에 감사드릴 것입니다.”


 제갈량은 진짜로 몸을 일으켜 우물로 다가가려 했다. 조운은 당황하여 황급히 제갈량의 앞을 막아섰다. 제갈량은 젊은 장군의 떨리는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십니까, 군사. 제가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함께 돌아가십시다. 주공께서 군사를 걱정하고 계십니다.”

 “어서 가세요, 장군. 이러고 계시다간 정말로 둘 다 죽습니다. 이 량의 재주야 글이나 읽고 학문이나 하는 선비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니, 제가 죽어도 주공께선 새로운 선비를 찾아 군사로 삼으시면 됩니다.

 하지만 장군은 세상에 둘도 없는 만인지적의 장수가 아니십니까? 주공께선 다른 이들에 비해 군세도 기반도 약하시니, 장군의 뛰어난 무용은 주공께 없어선 안 되는 것입니다.”


 조운은 제갈량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들고 있던 창을 내던졌다. 제갈량이 당황하는 사이, 조운은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일개 필부로, 여러 해 동안 주공을 따르며 많은 것을 배웠으나 제 사람을 버리는 법만큼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군사께서 가지 않으시겠다면 저 역시 가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군사와 함께 죽겠습니다.”


 그리고 조운은 정말로 엄심갑을 벗으려했다. 제갈량은 조운을 말리기 위해 한 발을 앞으로 내딛었으나, 다친 다리로 중심을 잡지 못해 크게 몸이 휘청였다. 조운은 넘어지려는 제갈량을 부축해 일으켰다. 제갈량은 조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어트렸다.


 “이미 늦었습니다. 저들은 더욱 포위를 두텁게 하고 있을 것입니다. 장군께서 저를 데리고 가신다면 필시 뚫지 못할 텐데요.”

 “있는 힘껏 뚫어보겠습니다. 장판교까지만 도달한다면, 그 뒤는 익덕 형님께서 도와주실 겁니다.”


 조운은 망토를 풀어 제갈량의 어깨에 둘러주었다. 새하얀 망토는 피로 간간히 얼룩이 져있었다. 제갈량은 손을 들어 창고의 입구를 가리켰다. 제갈량을 찾기 위해 창고로 들어오느라, 병사들이 내렸던 말이 아직 그대로 창고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저기 하얀 말이 있습니다. 저 말을 타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요?”

 “제가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제게 생각이 있으니, 따라주세요.”


 조운은 제갈량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녀의 몸을 번쩍 안아들었다. 피가 바닥 위에 붉은 점을 그렸다. 조운은 제갈량을 말 위에 올리고, 자신도 올라타며 그녀의 몸을 단단히 끌어안았다.


 “상처를 지혈할 시간이 없습니다. 조금만 견뎌주십시오.”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저를 안고 어찌 싸우실 생각이십니까.”


 조운은 창을 고쳐 쥐며 담담한 미소를 지어보였을 뿐이었다.


 “이 자룡, 한 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 주공의 곁으로, 함께 돌아갑시다.”

 

***

 

 조운은 초조했다. 창이 부러지면 죽은 병사의 것을 빼앗아 쓰고, 피할 수 있는 것은 비껴 흘리고, 날아드는 화살은 민첩하게 쳐냈다. 조운의 무예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나, 몸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품 안의 여인을 지키며 싸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조운을 초조하게 만드는 것은 그 상황이 아니었다. 제갈량의 몸을 감싼 망토 한 구석이 점점 붉게 물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제갈량은 창을 잡고 말을 타며 싸우는 무인이 아니었다. 이런 종류의 상처엔 익숙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여인이기에 체력은 더욱 떨어지고, 안 그래도 약한 몸은 거의 기진한 상태였다.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다치지 않고, 온전히.


 “장군.”


 제갈량의 목소리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말조차 타지 못할 만큼 몸이 약해 늘 수레를 이용하는 몸이었다. 하물며 이토록 격하게 흔들리는 난전중의 승마에, 계속해서 긴장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니 지치는 것은 당연했다.


 “한 가지 계교가 있습니다. 크게 소리를 쳐, 장군의 이름을 밝히시는 겁니다.”

 “저희는 타고 있는 말도 희고, 걸치고 있는 옷가지도 흽니다. 이미 충분히 눈에 띄는 상황인데, 제가 그리 소리를 치면 더욱 많은 이목이 집중될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이목을 끌어, 장군과 제가 여기에 있는 것을 조조가 알게 해야 합니다. 조조는 인재에 대한 욕심이 많고, 또한 그에게 있어 저희들은 어린아이보다 연약한 존재입니다. 반드시 방심을 하고 자만에 가득 차있을 것인즉, 저희들을 발견하게 되면 장군의 무예와 저의 지략을 탐내며 반드시 생포하라 명을 내릴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병사들은 온 힘을 다해 싸울 수 없으니, 반드시 살아날 길이 생기겠군요.”


 조운은 제갈량과 대화를 하는 중에도 두 명의 목을 베었다. 피가 솟구치는 소리, 시체가 넘어지는 소리에 제갈량은 움찔하며 몸을 움츠렸다. 조운은 제갈량을 안은 팔에 힘을 주며, 피에 젖은 창을 높이 치켜들었다.


 “상산의 조자룡이 여기 있다! 일찍이 박망파에서 너희들을 모조리 태우고 물속에 처넣은 제갈군사를 모시고 황숙께 돌아가는 길이니, 하늘이 내리신 귀한 인연을 방해하려는 자는 이 자룡의 창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들은 모두 목 없는 귀신이 되리라!”


 자룡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달려드는 병사가 반, 그 말을 듣고 주춤거리는 군사가 반이었다. 그러나 제갈량의 계교는 적중하여, 차츰 두 사람을 향해 날아드는 화살이 잦아들고 날카로운 창검이 물러났다. 갈고리와 올가미, 커다란 방패들은 창날에 비하면 훨씬 상대하기 쉬웠다. 애초에 자룡은 품 안의 제갈량이 다칠까 제대로 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날붙이가 사라진다면 일은 훨씬 쉬워진다.

 병사들의 그의 발목에 올가미를 걸기 전, 조운은 결국 한 방향의 포위를 뚫고 한 가닥 살길을 찾아내어 바람처럼 말을 달렸다.


 “군사. 군사, 되었습니다. 조금만 더 견디십시오.”


 간신히 장비가 지키는 장판교를 지난 조운은, 정신없이 말을 달리며 중얼거렸다. 품 안의 군사를 감싸다가 꿰뚫린 어깻죽지며, 예리한 검에 베인 허리에서 쉴 새 없이 피가 흘렀으나, 자신의 상처를 살펴볼 틈은 없었다. 제갈량을 감싼 하얀 망토는 이미 그 색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검붉게 물든 망토는 지나치게 무거워져있었다.

 저 멀리, 멈춰서있는 유비의 식솔들이 보였다.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조운은 이를 악물었다. 고지가 눈앞이었다.


 “자룡!”

 “주공!”


 조운은 제갈량을 안은 채 말에서 내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렸으나, 넘어지진 않았다. 유비는 조운의 상처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군사.. 군사께서, 다치셨습니다. 제때 지혈을 해드리지 못해서.. 피를 많이 흘리셨는데..”


 조운은 허둥거리며 제갈량을 감싼 망토를 벗겨냈다. 조운이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은커녕 어떠한 반응도 없는 제갈량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제갈량은 정신을 잃은 채 조운의 팔에 안겨있었다. 장비에게 뒤를 맡기고 장판교를 지나며 완전히 정신을 놓아버린 듯 했다. 제갈량의 얼굴은 원래 희었으나, 피를 많이 흘린 탓에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아직 숨은 쉬고 있었으나, 곧 끊어질 듯 가늘었다.

 조운은 황망한 얼굴로 유비를 보았다. 유비는 좌우의 사람을 시켜 제갈량을 부축하게 했다. 감부인이 기꺼이 마차를 내어주었다. 의자의 곁에서 오랫동안 조수 노릇을 해왔다는 여인 한 명이 같이 마차에 올랐다.


 “자룡. 자네는 또 어찌 이리 많이 다쳤단 말인가. 자네도 어서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네.”

 “저는.. 괜찮습니다. 주공께선 먼저 출발하십시오. 저는 가서 익덕 형님을 모셔오겠습니다.”

 “그럴 수 없네. 자네를 잃을 수는 없어. 자네도 어서 수레에 오르게. 말을 타는 것도, 싸우는 것도 모두 의자에게 상처를 보인 다음일세. 이건 명령이야.”


 유비는 조운의 손을 부여잡았다. 저 멀리서 급한 부름을 받은 의자가 허둥지둥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정말 고맙네. 살아서 돌아와주어 고맙고.. 군사를 데리고 와주어 고마워. 자네가 아니었다면 난 오늘 두 개의 손발을 잃을 뻔 했네..”


 조운은 유비의 눈물에 오히려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었다. 그가 유비의 인사에 예의를 갖춰 인사하고 병사들의 부축을 받아 물러나는 동안, 유비는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조운이 제갈량과 함께 돌아온 것은 천운이 따라주었기 때문이다. 제갈량은 이런 식의 무모한 돌파를 계획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상황을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수십만 적군 속에 외롭게 고립된 상황이라면, 아마도 조운 하나만들 살려 돌려보내고 자신은 남으려 했을 것이다. 그것이 그나마 성공할 확률이 높은 방법이기 때문에.

 유비는 수십 리 떨어진 곳에서 나누었을 대화와, 설득을 가늠해보았다. 이내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저 멀리서 호탕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장비를 발견한 유비는, 이내 몸을 돌려 자신도 말 위에 올랐다. 잠시 멈추었던 행렬은 다시 출발했다. 강하는 이제 지척이었다.

 

 

AND

[자룡공명] 제갈부인전

 

 조운은 유비의 방으로 들어섰다. 침실이었다. 유비는 다른 군주에 비해 엄격히 권위를 세우거나 허례허식을 따지는 편은 아니었으나, 침실까지 드나들 수 있는 사람들은 지극히 한정되어있었다. 관우와 장비, 자신, 그리고 제갈량.

 조운은 가볍게 예를 취하며 두 사람에게 인사를 올렸다. 유비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손짓하여 조운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러나 제갈량은 조운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언제나 여유롭다 못해, 간혹 냉담하게 비치는 미소를 머금고 있던 입술이 오늘만큼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어려운 일이 닥친 모양이구나. 조운은 그렇게 생각했다. 혹시 조조가 수십만 대군을 일으킨 것일까. 아니면, 손권이 또다시 형주를 빼앗으려 드는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우리의 군사를 저렇게 긴장시킬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조운이 질문을 입 밖으로 내기 전, 유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


 “괜찮으시겠소?”

 “괜찮지 않은들 어찌하겠습니까.”


 제갈량의 목소리엔 피로가 묻어났다. 조운이 영문을 모른 채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동안, 제갈량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이내 입을 열었다.


 “주공께서 새로이 혼인을 올리실까 합니다.”


 조운은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유비는 이미 세 번의 혼인을 했다. 또 다른 부인이나 첩실을 얻는 것은 전혀 누가 되는 일이 아니었다. 이미 저 위의 조가는 부인이 열다섯에 첩실은 수백이라지 않은가. 물론 혼인은 인륜지대사이니만큼 신중히 결정해야하는 문제지만, 오랫동안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고는 하나 일개 장수일 뿐인 자신과는 상관없는 문제였다. 의논이라면 유비의 가족과 하는 편이 옳았다.


 “그렇습니까.”

 “그 이상은 묻지 않으십니까?”

 “주공의 일입니다. 어찌 제가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요. 그 누구보다 장군의 허락이 가장 중요합니다.”


 조운은 의아한 얼굴로 제갈량을, 그리고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유비를 번갈아보았다. 제갈량은 내리깔고 있던 눈을 바로 떠 조운을 똑바로 마주했다. 유비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제갈량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주공의 첩실로 들어가려 하니까요.”

 “..?”


 자룡은 헛것을 들은 사람처럼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제갈량은 쥐어짜내듯 목소리에 힘을 주어 간신히 한 글자씩을 뱉어냈다.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조운은 그 뒤에 비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찌 모르겠는가. 자신의 온 마음을 다 내어준 정인일진데.


 “이 량은 병서와 옛 성현의 말씀을 부지런히 공부하여 몇 가지 재주를 익히고, 끝내 조가나 손가 따위는 개미보다 하찮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병법을 손금 보듯 볼 수 있으니, 이는 결코 어리석은 만용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한낱 여인이 아닙니까. 제가 아무리 놀라운 재주를 선보이고 수십 번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들, 관 장군과 장 장군은 물론이요, 가장 낮은 병사들조차 마음으로 저를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병사들이 군사를 진정으로 따르지 않으면 반드시 군율이 흐트러지고, 군령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니, 전투는 당연히 패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서는 유황숙의 병사들은 여인의 호령을 받는다하여 비웃음을 사고 백성들의 민심은 떠나갈 것입니다.”


 조운은 제갈량의 차분한 설명을 들으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는 아직 분노하지 않았다. 다만 모든 것이 갑작스럽고 혼란스러워, 당황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허나 제가 주공을 지아비로 모신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관 장군과 장 장군에겐 형수가 되니 그들은 저를 주공을 모시듯 섬길 수밖에 없으며, 낮은 병사들은 주군의 부인에게 예를 갖추고 그 명령에 복종해야 합니다. 또한 사람들은 이 량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지아비를 섬기며 사지를 함께하는 열녀로 볼 것이니.. 민심을 얻기에도 좋습니다.”


 제갈량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운의 앞으로 걸어왔다. 옷자락 아래로 신발이 보였다. 언젠가 조운이 선물한 그 신발을 신고 있었다. 조운은 그제야, 자신이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갈량은 천천히 몸을 숙여, 조운의 앞에 엎드렸다.


 “장군께선 부디 노여워 마시고, 대업을 위해 남녀의 사사로운 정은 잊어주시길 청합니다. 주공께선 장군이 마음으로 따르지 않는다면 결코 이 혼사를 행하지 아니할 것이라 못 박으셨으니, 장군의 허락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조운은 입을 꾹 다물었다. 조운은 지금껏 몇 번이나 제갈량의 명을 받았고, 언제나 기꺼운 마음으로 명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그 어떤 명령도 방금 들은 이 말보다 어렵고 잔인하진 않았다.

 어렵고 잔인했다. 정말로. 차라리 자신을 승산 없는 싸움으로, 결코 돌아올 수 없을 사지로 내모는 명이었다면 지금처럼 참담한 기분이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운은 제갈량의 작은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천히 유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유비는 여전히 부드러운 그 미소를 띤 채, 조운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저어보였다. 원치 않는다면 허락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제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느니 차라리 어렵고 불확실한 길을 가겠다는 뜻이었다. 유비는 늘 그런 사람이었다.

 떨리고 일렁이던 조운의 눈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조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제갈량의 앞으로 다가갔다. 바닥에 엎드린 그녀의 팔을 부축하여 일으켰다. 소매 아래로 잡히는 팔은, 며칠사이 더 말라있었다.


 “어찌 새삼스럽게 제 의견을 물으십니까. 주공과 군사의 뜻이 곧 이 운의 뜻이니, 저는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뜻대로 하십시오.”

자룡.”


 유비는 조용히 조운을 불렀다. 그러나 조운은 유비를 향해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제갈량의 얼굴을 향해있었다. 한없이 애타고 애절한 시선이었다.


 “나는 자네의 마음을 알고, 군사의 마음도 알고 있네. 두 사람이 서로를 아끼고 은애함을 알고 있는데, 내가 어찌 그럴 수 있겠나. 원치 않는다면 거절해도 좋네.”


 자룡은 입술을 달싹였다.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제갈량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운을 보지 않고 있었다. 차라리 얼굴을 들어 표정이라도 보여주면 좋으련만. 이미 제 시선은 또렷이 느끼고 있을 터인데.

 그러나 제갈량은 끝내 조운을 외면하고 말았다. 그 단호한 태도에서 답을 읽은 조운은, 한숨 섞인 미소를 지으며 유비의 말에 답을 내놓았다.


 “형제는 손발이요, 여인은 의복이라 하였습니다. 주공께선 저를 관, 장 두 분 못지않은 형제의 정으로 대해주시는데, 무슨 염치로 여인을 향한 사사로운 정조차 꺾지 못하겠습니까.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좋으니, 다만 두 분 께서는 대업과 고통 받는 백성만을 생각하여 주십시오.”

 

***

 

 사람들은 황숙이 현인을 얻는다며 기뻐했다. 붉은 등과 붉은 비단과 붉은 꽃이 온 사방을 붉게 수놓았다. 악공들의 연주가 어둠을 헤집으며 퍼져나갔다.

 신방에 앉은 신부는 얼굴 앞으로 붉은 천을 늘어트리고 있었다. 곧 신랑이 다가와 천을 걷어낼 것이고, 신부를 안아 침상으로 데려갈 것이다. 내 군사껜 손가락 하나 대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정인을, 내가 어찌 취하겠소. 나는 그런 짐승 같은 짓은 하지 못합니다. 유비는 몇 번이나 그렇게 약속하였으나, 그것이 위로가 되진 못했다. 혹여 애가 들어선들, 그것이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으랴. 오히려 아이가 생기면 자신의 위치는 더욱 확고해 질 테니, 이 혼인의 목적과는 부합하는 일이다.

 그리고 만일 아이가 생긴다면, 조운이 자신을 향한 마음을 정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자신은 평생 그에 대한 애정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겠지만.. 그와 자신의 관계에 끝을 고한 것은 자신이다. 자신은 그에게 불평을 할 어떠한 자격도 없었다. 그도 훗날 고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자식을 낳는다면.. 자신은 과거의 한 시절 추억으로 남을 것이고.. 내키지는 않는 일이지만..

 한없이 부정적이고 우울한 상념에 빠져들던 제갈량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느끼지 못했다. 제갈량이 퍼득 정신을 차린 것은,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지척으로 다가온 뒤였다. 긴장한 듯 뻣뻣한 걸음걸이로 다가온 신랑은 신부의 앞에 섰다. 붉은 천 사이로 남자의 신발이 보였다.

 스릉. 검이 천천히 뽑혀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저 검 끝이 붉은 천을 걷어내면 모든 것이 끝난다. 제갈량은 눈을 감았다. 가슴을 꽉 틀어막은 습한 열기가 괴로워, 깊은 한숨을 소리죽여 내쉬었다. 눈물을 머금은 숨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날을 세우지 않은 검이 천천히 천을 걷어내었다. 그 아래 숨겨진, 슬픔으로 창백한 신부의 얼굴이 드러났다. 제갈량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자신을 찾아온 신랑을 올려다보았다.


 붉은 옷을 입은 조운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 .”


 제갈량은 당황한 목소리로 조운을 불렀다. 조운은 들고 있던 가검을 떨어트렸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찌.. , 일입니까?”

 “주공께서.. 저를 은밀히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몰래 사람을 불러 지은.. 붉은 옷을 내주시더이다.”


 조운은 천천히 제갈량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단단한 손이 천천히 올라와 제갈량의 뺨을 어루만졌다. 원래도 말랐던 뺨은, 마르다 못해 수척해져있었다. 조운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제갈량을 바라보며, 두 손으로 신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신부의 눈에서 결국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당신을 평생 이렇게 부르고 싶었지만.. 앞으로는.. 평생 부르지 못할 말이지만, 오늘 밤만은 당신을 원 없이 부르겠습니다.”


 제갈량은 손을 들어 올려 조운의 손을 감싸 쥐었다. 조운은 울컥 치받는 것을 간신히 삼키며, 제 손을 감싸 쥔 제갈량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가 살아생전 보았던 그 어떤 것보다도 곱고 연약해서, 혹여 힘을 주면 부러질까 마음 놓고 잡아보지도 못한 손이었다.


 “부인..”


 이렇게 빨리 끝이 올 것을 알았더라면, 조금 더 잡아볼 것을. 볕이 좋은 날에는 물이 오른 꽃가지를 꺾어 선물할 것을. 술에 취한 체, 이 작은 몸을 꽉 한번 안아나 볼 것을.

 제갈량은 눈을 감았다.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조운은 신부의 몸을 안아들었다. 병약하고 마른 신부는 깃털만큼 가벼웠다. 신부의 하얀 손이, 그의 붉은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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