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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뮤지컬 적벽

관운장 위주 망상글.


[적벽] 선생. 부디.

삼고초려


힘과 무예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 있다. 운장이 그것을 깨달은 것은 거듭되는 패배와 실패에 절망을 배울 즈음이었다. 운장과 익덕, 자룡. 그들은 말 한필과 창 한 자루만 있다면 백만대군이 두렵지 않은 만인지적의 장수들이었으나, 그들의 주군 현덕은 그 무엇도 이루지 못한 채 패전을 거듭할 뿐이었다.

조조 따위야 무서울 것이 뭐 있소? 조조가 아니라 조조 할애비가 온다 해도 소제가 다 물리칠 것이니, 중형은 걱정인들 마시오.”

익덕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 만만하게 가슴을 팡팡 두드렸고, 현덕은 그런 익덕이 든든하다며 부드럽게 웃고 말 뿐이었다. 그러나 운장은 조조가 아니라 조인 따위가 쳐들어올 때조차 마음껏 싸우지 못하고 상황을 살피며 몸을 사려야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다.

그렇기에 운장은 서서의 능력과 책략에 감탄했으며, 서서가 떠나며 천거한 공명이란 자가 절실했다. 천하의 불쌍한 억조창생들을 가슴에 품은 현덕만큼이야 절절하겠느냐마는, 그런 현덕의 꿈이 더 이상 좌절하거나 짓밟히는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운장에게는 공명이 필요했다.

얼굴도 모르는 이를 모시고자 현덕이 세 번이나 직접 발걸음을 하는 것은 운장에게도 달가운 일일 수 없었다. 운장에게 하늘 아래 진정한 영웅은 오직 현덕뿐이었다. 그러나 운장은 내색하지 않았다. 매번 불만 가득한 얼굴로 투덜거리고 씨근거리는 익덕을 달랠 뿐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아주 어렵게 만난 공명은, 꼭 신선 같은 사람이었다.

낭설을 듣고 허행하였나이다.”

현덕을 거절하는 공명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운장의 눈은 언제나 현덕을 쫓고 있었다. 그렇기에 운장은, 공명을 처음으로 눈에 담은 순간의 현덕을 보았다. 언제나 부드럽고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으나 차마 완전히 지워내진 못했던 깊은 수심이 물러나고, 무겁고 두터운 구름 사이로 햇살이 스며 나오듯 환해지는 현덕의 표정을 보고야 말았던 것이다.

형님에겐 이 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뇌리를 스친 그 생각을 자각하였을 때, 운장은 이미 공명의 앞을 막아선 뒤였다.

공명이 운장을 올려다본다. 운장은 평생 기치창검을 높이 들고 수천 군사를 호령해온 장수들도, 자신의 앞에 서면 움츠러드는 것을 왕왕 보아왔다. 그러나 공명은 똑바로 운장의 눈을 마주보았다. 당장이라도 자신의 목을 한 손으로 꺾어버릴 수도 있을 만인지적의 장수 앞에서도, 전혀 두려움 없는 당당한 눈빛이었다.

익덕의 말대로다. 밭이나 조금 갈아보았을까, 평생 죽간보다 무거운 것은 들어본 적도 없을 듯한 백면서생이니, 여기서 자신이나 익덕이 공명을 묶어 강제로 신야로 끌고 간다 한들 제대로 반항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운장은 무릎을 꿇었다. 자신의 행동에 익덕이 당황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나, 운장은 그대로 공명에게 고개마저 숙여버렸다. 뒷덜미로 냉정한 시선이 차분하게 쏟아졌다. 잠시 자신을 그렇게 내려다보던 공명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자신을 지나쳐갔다.

운장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익덕 역시 공명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공명은 무심한 바람처럼 표표히 익덕마저 지나쳤다.

결국 현덕이 다시 공명을 불렀다. 공명에게 도움을 청하고, 고통 받는 민초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현덕의 목소리는 애간장이 끊어질 듯 애절하고 절실했다. 현덕의 울음을 들으며 운장은 몇 번이고 청했다. 감히 현덕을 앞질러 입 밖으로 말을 뱉지는 않았으나, 공명이라면 분명히 알아들을 것이다. 그런 이유모를 확신을 가진 채, 운장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선생.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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