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설이 될 사람 연재시점에서 작성
*선동과 날조
*까치전하가 그때 그 비숍이라는 설정
*중간에 시점변화 좀 있어요
*처음엔 이슬라이타이 쓰고 싶었는데 모르겠다.. 이번주 타이난이 너무 쩐다..
“이슬레이! 마나 얼마나 남았어?”
“30%정도. 여유 있어.”
“좋아, 잠깐 딜 늦추고 마나 관리해. 탱커 버프 쿨타임 돌려야하니까. 에피타이저! 보스 체력 3%만 더 깎이면 다음 페이즈로 넘어가! 방어버프 쿨타임 얼마나 남았어!”
“3초!”
캐스터의 장점 중 하나는 탱커처럼 바쁘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슬레이가 주문을 외우며 시전식을 펼치는 동안, 라이퀴아는 이슬레이에게 마나회복 버프 하나를 걸어준 뒤 에피타이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검은 옷. 검은 등. 검은 머리카락. 이슬레이는 라이퀴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상념을 굳이 억누르지 않았다. 진정해, 아이작. 너무 자책하지 마. 그 사람의 목소리를 너의 모습에 비춰보면서. 이 심증을 확실하게 굳혀줄 작은 단서라도 나오기를 바라면서.
한 번 떠오른 상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기억 속에 두서없이 뒤섞여있던 목소리들이 사방에서 튀어 올랐다. 자신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목소리들이 기억을 뒤덮었다.
‘당연하죠, 저 님 완전 존경하는..’
아, 그래. 관심 없어. 쓸모없으니까 조용히 해.
‘그때 파티 구성만이라도 알려주세요. 탱은 역시..’
“이슬레이!”
라이퀴아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이슬레이는 스태프를 치켜들었다. 주문의 마지막 음절을 내뱉자 시전식이 환하게 빛났다. 완벽한 타이밍을 맞춰 자신의 몸에 감기는 화염 증폭 버프. 8티어의 파이어월. 불기둥이 내리꽂히는 순간, 끊임없이 거슬러 올라가던 그 쓸모없는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3페에서 4페로 넘어갈 때 힐러한테 붙는 즉사 기믹은 어떻게 처리하셨어요? 역시 딜러가 대신 맞고 리저렉션으로 살려주나요? 하지만 리저를 쓸 만큼 마나 여유는 없다고 하던..’
그런 패턴, 클로즈베타 때는 없었어.
이슬레이는 황급히 보스에게서 시선을 떼고 라이퀴아를 찾았다. 반짝, 그의 발 주변에 반짝이는 흰색 원. 처음 보는 패턴이었으나, 무엇인지 짐작은 쉽게 할 수 있었다. 이슬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땅을 박차며 달려 나갔다.
“라이퀴아!”
“..? 엑?!”
터엉, 급하게 멱살이 잡히듯 바닥으로 내쳐진 라이퀴아가 놀랄 새도 없이, 이슬레이는 흰 원 안에 두 발을 디뎠다. 거대한 보스가 고개를 쳐들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고막을 찢는 보스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던전 안에 메아리쳤고,
“이슬레이!”
번쩍. 새하얀 빛무리가 이슬레이를 향해 내리꽂혔다. 쿠과광,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라이퀴아의 외침이 들려왔다.
맹렬하게 타오르던 새하얀 빛무리가 조금씩 사그라지기 시작했을 때, 라이퀴아는 쏟아지는 빛무리 속에서 흔들림 없이 마법을 시전 하는 이슬레이의 모습을 보았다.
옅어지는 역광 속에서, 빛을 받아 섬뜩하게 반짝이는 눈동자. 그 눈빛에 과거의 기억이 겹쳐졌다. 쏟아지는 브레스. 사룡의 둥지. 그 아득하고 불안했던 감정들이 고개를 들었다.
“패턴 바뀌었다고 했어! 정신 차려!”
“뭐? 뭐?”
“리뉴얼되면서 보스 패턴 바뀌었다고 했어. 지나가듯이 들은 말이라 기억을 못하고 있었네, 미안해.”
“아 X발, 그만 좀 떠들고 리딩이나 해 새끼들아! 나는 여기 완전 초행이라고!”
이슬레이는 스태프를 고쳐 쥐며 라이퀴아를 보았다. 이슬레이의 로브에서 은은한 푸른빛이 떠올랐다가, 푸스스 부스러지듯 사라졌다.
“리딩해줘, 라이퀴아.”
“너..”
“즉사방지 옵션도 꺼졌고, 난 이제 한 번만 실수해도 죽을 거야. 하지만 나는 내 판단을 믿지 못하겠어. 그러니까 네가 리딩해줘. 네가 하라는 대로 할 테니까.”
이슬레이는 라이퀴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라이퀴아는 잠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눈을 두어 번 깜빡인 뒤, 내밀어진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뭐야, 갑자기. 해킹 당했어?”
“이젠 내 잘못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잘못된 걸 고치려는 것뿐이야.”
“뭐라는 거야.”
“아하하.”
라이퀴아는 이슬레이의 손을 가볍게 털어내고 에피타이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슬레이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다가 주먹을 꾹 쥐었다. 아무리 마나회복 속도가 빨라졌다고 하더라도, 상위티어 마법을 난사하는 것은 힘들었다.
“미안, 에피타이저! 측면 조심해, 방어버프는 지금 켜지 말고, 이따가 중간에 바닥 쓸면서 들어오는..”
이슬레이는 팔을 앞으로 뻗었다. 또다시 그를 집어삼키려는 상념들을, 이번에는 생각보다 쉽게 안쪽으로 밀어 넣을 수 있었다. 지금은,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까. 제 생각 따위를 정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썬더콜링의 시전식이 팔과 어깨를 휘감고, 청록색 번개가 손끝으로 모여들었다.
던전 클리어! 입구로 돌아갑니다...
익숙한 두 문장이 눈앞에 떠올랐을 때, 세 사람은 모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실제로 신체적인 통증이 발생하지는 않았어도, 정신적으로 피곤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와, 진짜 망겜. 똥망겜. 밸런스 개똥망겜.”
“그러게, 예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는뎅..”
“...”
이슬레이는 식은땀이 흐른 뺨을 손등으로 훔치며 고개를 들었다.
사냥꾼들
길드
에피타이저 디저트
자쿠스카
이슬레이
모든 던전의 입구에 새겨지는 퍼스트 클리어자 명단. 이슬레이는 그 명단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세 명 뿐인 명단. 또다시 기억의 한 지점과 맞물리는 상황.
“이슬레이.”
“응?”
라이퀴아의 목소리에 이슬레이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너 아까 그거 말이야..”
“괜찮아.”
“엥?”
이슬레이는 자신의 로브를 가리켰다.
“대장장이가 만들어준 로브. 장인 옵션으로 즉사방지 1회 기능이 추가되어있더라고. 그 기능 믿고 뛰어든 거니까, 부담스러워하거나 미안해할 필요 없다는 말이야.”
“..하! 차암-눼, 누가 고맙댔냐!! 내 감동 돌려내!!”
“지랄들 한다..”
에피타이저의 목소리에 이슬레이는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급하게 출발했던 그들은 마을로 돌아갈 귀환스크롤을 챙기지도 못했고, 람다까지 걸어가기에는 너무나 피곤했다. 마나가 회복되는 대로, 텔레포트를 사용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진짜 몰랐다. 그러니까 의심하진 마. 그 사람이랑 대화하다가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 나온 게 다라서, 미처 생각이 안 미쳤어.”
“그 사람?”
“응. 안경 끼고 모자 쓴.”
“아, 걔~”
에피타이저는 이슬레이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까부터 느껴지던 위화감의 정체를 알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야, 너 컨셉 바꿨냐? 어째 전보다 말이 좀 많아진 것 같다?”
“잘못된 걸 알았으면 조금씩 바꿔가야 하지 않겠어. 똑같은 실수는 반복하면 안 되지. 이미 늦었지만.”
“뭔 소리야, 아무튼 저 컨셉충 진짜.”
“아하하하.”
이슬레이는 벽에 머리를 기댔다. 던전 벽의 단단하고 차가운 감촉이 등을 타고 고스란히 느껴졌다.
‘뭐야. 별 시답잖은 걸 물어봐, 괜히 쫄았네. 거야 당연히-’
머리가 아팠다. 스스로가 한심하고 한심해서.
자신의 길드니까, 자신을 배신하지 말라고. 그렇게 데려온 새로운 길드원. 이슬레이는 벽에 가볍게 머리를 부딪쳤다. 꿍, 하는 가벼운 소리가 흘렀다.
‘...아하하, 무슨 소리야. 어차피 넌 영웅 길드도 아니잖아.’
‘시끄러 새끼야, 마스터도 지금은.. 어어? 뭐야, 뭐야, 왜 날 때려!’
그래, 내가 판 무덤이란 소리지. 네가 그 새끼를 받아들인 것도, 나와 너 사이의 거리를 절대로 좁힐 수 없게 된 것도, 그 새끼가 네 주변을 아직까지 맴도는 것도.
“후아, 그래도 깨긴 깼네. 재밌었어, 그치?”
“미쳤냐. 이딴 던전 다신 안 와. 이건 또 뭐야, 아이토늄?”
“엉, 클베땐 여기서만 아이토늄 드랍 됐었거든. 이제 슬슬 돌아갈까~ 마을까지 걸어가려면 한참 걸릴 텐데.”
“조금만 더 쉬었다가 가자. 나 마나 조금만 더 차면 텔레포트로 갈 수 있어.”
“그래? 그럴까 그럼?”
“전부터 궁금했는데 이 새끼는 왜 이렇게 매사에 흔쾌하지?”
라이퀴아의 볼을 꼬집는 에피타이저의 목소리에, 이슬레이는 작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헐, 이게 뭐야.”
“와, 미친. 작살났는데?”
이슬레이의 텔레포트로 마을로 돌아온 세 사람은 심하게 부서진 사냥꾼들의 아지트를 보며 당황하고 있었다. 타이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핏자국이 둘. 시체는 없는 것을 보니 이미 부활을 했나 싶었다.
“어, 이슬레이다. 옆엔 영웅 길마 아닌가?”
“헐, 진짜다. 님들! 님들, 지금 완전 큰일 났어요!”
무너진 집터를 구경하단 사람들 중 서너 명이 세 사람에게로 달려왔다. 그 저돌적인 기세에 라이퀴아는 엑, 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으나, 그 다음 이어진 말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대의 어깨를 잡아챌 기세로 되물었다.
“지금 타이난님이랑 까치랑 pk터졌어요!”
“뭐?! 어디에서?!”
“마을 입구 쪽이요!”
“고마워! 이슬레이, 텔레포트 한 번 더 가능해?”
“마을 입구까지라면 어떻게든 될 거야.”
라이퀴아는 한 손으로 에피타이저의 손목을, 남은 한 손으로는 이슬레이의 손목을 덥썩 붙잡았다. 이슬레이의 몸이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으나, 마음이 급한 라이퀴아는 그 움직임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이슬레이는 눈을 감고, 마을의 입구로 텔레포트했다.
“타이난!!”
“오. 드디어 오셨네.”
화사하고 유순한 인상의 남자는 건물의 잔해로 보이는 돌더미에 걸터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아직 죽진 않았지만, 엉망진창으로 당한 타이난이 쓰러져있었다.
“당신이 그 ‘마스터’인가요?”
“뭐야, 너 뭐야, 갑자기!”
“전 까치 넘버1.”
남자는 웃으며 바닥에 쓰러진 타이난을 발끝으로 툭툭 쳤다.
“안 죽였으니까 그렇게 화 안내셔도 돼요. 까치 11이 제 말에 거역하기에 버릇을 좀 고쳐주려고 한 것뿐이에요. 한 조직에 들어왔으면 수장의 말에는 절대적으로 복종해야하는 것 아니겠어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당장 그 발 치우지 못해!”
“하하, 당돌하시네요. 그 ‘마스터’라는 분이 어떤 사람인지 내심 궁금했는데. 뒤에 계신 분들은 길드원이신..”
남자는 웃으며 라이퀴아의 뒤에 서있던 에피타이저와 이슬레이를 보았다. 검을 빼어들고 전투자세를 취하고 있는 에피타이저와, 당장이라도 튀어나가려는 라이퀴아의 어깨를 붙잡고 있는 이슬레이를.
“어...”
조금 당황한 듯한 얼굴로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이슬레이. 남자는 그를 알아보았다. 남자는 돌더미에서 가볍게 뛰어내려 그들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이작! 너 아이작 맞지?”
라이퀴아의 어깨를 잡은 이슬레이의 손에 움찔 힘이 들어갔다. 온통 타이난에게 정신이 팔려있던 라이퀴아가 그제야 이상함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라이퀴아는 자신이 기억하는 한 처음으로 여유 없는 이슬레이의 표정을 보았다.
크게 뜬 눈과, 떨리는 눈동자. 남자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떨림은 심해졌고, 결국 라이퀴아의 어깨를 놓아버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나기까지 했다.
“반응이 왜 그래, 아이작. 내가 널 얼마나 찾아다녔는데.”
“당신, 은..”
“아이작, 나랑 같이 가자.”
남자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이슬레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슬레이의 시선은 남자의 손끝에서 떠나지 않았다. 놀라고 당황한 표정의 라이퀴아도, 영문을 모른 채 상황을 살피고 있는 에피타이저도, 바닥에 쓰러져있는 타이난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우리 샌드스톰때 재미있었잖아. 그렇지? 난 계속 너랑 놀고 싶어. 내 길드에 들어와, 아이작. 너라면 입단과 동시에 까치 넘버도 달 수 있어. 나랑 같이 가자.”
이슬레이는 한쪽 손을 올리며 입을 가렸다. 남자의 손끝을 바라보던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이슬레이..”
라이퀴아의 부름에 이슬레이는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두 사람의 푸른 눈동자가 아주 짧게 서로를 스쳐지나갔다. 이슬레이는 얼굴의 절반을 가렸던 손을 내리고, 천천히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진심이에요? 내게, 당신의 길드로 들어오라고?”
“그래. 난 너 같은 유저와 같이 놀고 싶어, 저런 쓸모없는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라.”
“하, 친구라도 해주겠다는 소리인가.”
“네가 원한다면 못해줄 것도 없지. 넌 그 정도의 가치는 있는 애야, 아이작.”
남자의 앞에 선 이슬레이는 문득 라이퀴아를 돌아보았다. 조금 전의 동요는 사라진 채, 담담한 표정을 한 이슬레이는 언제나처럼 침착해보였다. 그렇게 서로의 시선이 마주친 것은 아주 잠시 뿐. 이슬레이는 곧 시선을 돌려 남자를 쳐다보았다.
“감사한 말씀이지만 두 가지는 고쳐드려야겠네요.”
“응?”
이슬레이는 내밀어진 남자의 손을 잡았다. 남자는 유순한 생김새에 어울리는 환한 미소를 짓고, 이슬레이의 손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전 이제 아이작이 아니거든요. 그 닉은 정식오픈 때 뺏겼으니까요. 지금은 이슬레이입니다.”
“에이, 뭐 어때. 그렇게 정색할 필요 없잖아. 기분 나빴어? 그럼 고칠게, 됐지? 나머지 하나는 뭐야?”
라이퀴아는 문득 이슬레이의 소매자락 안쪽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비치는 것을 발견했다. 카타나가 만들어준 로브는 이슬레이가 평소 착용하는 의상과는 다르게 품이 크고 헐렁했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손이 완전히 가려질 정도로 크기가 맞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러 소매 안에서 팔을 조금 굽혀 손을 숨기고 있는 듯 했다. 어째서?
“나는 영웅 길드 소속이야.”
이슬레이는 남자의 손을 잡지 않은 팔을 위로 치켜들었다. 손을 휘감은 청록색 번개. 썬더콜링이었다.
“날 데려가고 싶다면 내 마스터에게 먼저 물어보는 게 순서지.”
남자는 민첩한 움직임으로, 내리긋는 이슬레이의 손목을 낚아챘다. 손끝에 맺힌 번개는 퍼지지 못하고 넘실거렸다.
“물론 마스터가 허락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거부했겠지만.”
“아이작, 너..”
“한 가지 더 알려줄까? 이 썬더콜링, 전혀 막을 필요 없었어. 지금 내 마나는 바닥을 쳐버려서, 이 한 발로는 오크 한 마리 잡을 수 없거든. 거의 노데미지였을걸.”
“뭐?”
달그락. 남자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에게 활을 겨눈 타이난은, 짜증나 죽겠다는 얼굴을 한 채 한껏 불만을 담아 투덜거리고 있었다.
“기분 나빠 죽겠네. 우리가 언제부터 귓 주고받는 사이였다고. 지가 마스터도 아니고 왜 오더질이야, 오더질은.”
“빨리 쏘기나 해. 나 마나 없어서 오래 못 버텨.”
“너 안 비키면 니 허리 짤린다.”
“그러던지. 다시 살아나면 너부터 죽이러 갈 거야.”
남자는 이슬레이의 손을 뿌리치며 몸을 피하려했다. 그러나 그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가 사나운 눈빛으로 이슬레이를 돌아보았을 때, 이슬레이는 그를 향해 씨익 웃어보였다.
“썬더콜링보단 홀딩을 조심했어야지. 나 꽤 랭크 높거든.”
바닥에서 뻗어 나온 빛넝쿨이 다리와 팔을 휘감았다. 타이난은 활시위를 놓았다. 근거리에서 폭발적인 위력을 내는 화살. 손발이 묶인 상태의 남자가 시전 한 매직실드는 그 화살을 막지 못했다. 위력은 줄었으나, 매직실드의 상위 히든스킬을 깨부수며 날아간 타이난의 화살은 남자의 오른팔을 관통했다.
“아, X발. 또 오른팔이야.”
“너.. 이 새끼들이..”
“아, 하나 더 알려줄까?”
이슬레이는 남자의 오른팔이 날아가며 자유로워진 손을 들어올렸다. 이슬레이의 손끝에 시전식이 어렸다.
“장비는 믿을만한 제작자에게 맡기는 게 좋아. 이 로브, 마나회복속도가 상당하거든.”
청록색 번개. 썬더콜링. 남자의 눈에 분노가 어렸다. 이슬레이는 그의 눈빛을 똑바로 받아내며 씨익, 분명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미안해요. 하지만 난 두 번 다신 내 마스터를 배신할 수 없어.”
콰르릉. 번개가 치는 굉음에, 그 다음 이어진 이슬레이의 목소리는 모두 묻혀버렸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순 없는 거니까.”
“이슬레이! 타이난!”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던 라이퀴아는 그들을 향해 급하게 걸음을 옮기려했다. 그러나 람다의 흙먼지가 가라앉고, 그 사이에 우뚝 서있는 그 남자를 보았을 때. 라이퀴아는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아, 씨발. 별게 다..”
남자의 한 손에는 이슬레이의 로브자락이 잡혀있었다.
파티원이 사망했습니다.
떠오르는 시스템메시지. 라이퀴아의 눈이 커졌다. 남자는 고개를 처든 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쓸 만해서 좀 키워보려고 오냐오냐해줬더니 주제를 모르고 지랄들이야.”
“어? 어?”
“썬더콜링? 고작 쥐똥만큼 회복된 마나로 뭘 어쩌겠다고?”
흘긋. 남자는 라이퀴아를 살피듯 훑어보았다. 그 서늘한 시선을 마주한 라이퀴아는 흠칫하며 무기를 꺼내들었다.
“썬더콜링은..”
파지직. 남자의 팔에 청록색 번개가 휘감겼다. 점차 팔을 타고 올라와 어깨를 감싸고, 하나의 날개처럼 뻗어나가는 번개는 아름답고 위협적이었다.
“이렇게 쓰는 거야.”
“타이난, 피해!”
썬더콜링 히든. 콰르릉. 순식간에 뻗어나간 번개가 타이난에게 내리꽂혔다. 타이난!! 그의 이름을 부르는 라이퀴아의 목소리가 비명처럼 울려 퍼졌다.
“이 미친 새끼가!”
“라이퀴아!”
라이퀴아가 남자에게 달려들려는 찰나, 에피타이저가 라이퀴아를 제치며 뛰쳐나갔다. 순식간에 남자에게 가까이 접근한 에피타이저가 내리친 역수대검은, 장갑을 낀 남자의 맨손에 너무나 쉽게 가로막혔다. 털썩. 남자가 던지듯 놔버린 이슬레이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 차려, 새끼야. 탱은 너보다 내가 낫다며.”
“에, 에피타이저..”
“탱은 내가 설게. 같이 조져버리자.”
에피타이저의 초록색 눈동자가 남자를 똑바로 쏘아보았다.
“나도 지금상황 좀 빡쳤거든.”
“하아.. 정말이지.”
남자는 에피타이저의 힘을 버텨내며 다시 한 번 긴 한숨을 내쉬었다. 라이퀴아는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전투태세를 취했다.
“이슬레이. 타이난.”
체력과 공격력 증가 버프. 방어력, 스피드, 회피 증가 버프. 각종 이뮨 버프. 에피타이저에게 하나 둘 버프를 걸어주며, 라이퀴아는 두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둘 다 부활하지 말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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