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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숍이작] 2017.03.12 롤겜만화 전력 3회 - 화이트데이


[몬스터에게 빼앗긴 사탕을 되찾아주세요!]

 

아이작은 깜빡이는 이벤트 배너를 몇 번이나 터치하며 내용을 읽었다. 사실 별다른 내용도 없었다. 몬스터를 잡으면 일정 확률로 드랍하는 교환권을 모아 NPC에게 찾아가면, 교환권의 개수에 따라 선물용 화이트데이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인벤이나 서버게시판엔 이미 드랍률이 높다는 필드의 정보가 속속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작이 혼자 사냥을 할 수 있을만한 필드는 거의 없었다.

고렙존에 드랍률을 저렇게 높여놓으면 어떡해.’

삐죽, 아이작은 부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인벤토리를 뒤졌다. 그 사람이 선물해준 스태프와 기본적인 장비들. 그 사람과 함께 다니노라면 먹을 일이 없어 인벤토리 구석에서 쌓여만 가는 포션들. 사냥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며 그 사람이 선물해준, 스텟을 소폭 올려주는 음식. 사냥을 하며 조금씩 주워 모은 잡템들. 혹시 필요하면 쓰라고 그 사람이 줬던 약간의(어디까지나 그 사람의 기준으로..) ..

한숨이 나왔다. 이래서야 기생충이나 다름없잖아. 자신의 인벤토리에 있는 대부분의 아이템들은 그 사람의 손을 거친 것이었다. 이건 누가 봐도 그 사람의 등골을 빼먹는 짓일 텐데.

한참동안 인벤토리를 뒤적이던 아이작은 이내 굳게 다짐한 얼굴로, 스태프를 꺼내들었다.

 

***


하하, 아니에요. 그때 비숍님이 아니셨으면 저희 파티는 정말..”

진짜 아니에요. 전 그때 버프 조금 걸어드린 것 말고는 한 게 없는걸요. 다들 센스는 좋으시니까 아이템 파밍만 다 하시면 제가 없어도..”

비숍은 오늘도 어김없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화려한 방어구와 강력한 무기를 가진 강한 유저들 사이에 서있는 그 사람은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모두가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모든 사람의 얼굴에 웃음을 피워내는 따듯한 사람이라서, 아이작은 그 사람이 좋았다. 하지만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만은 자신뿐만이 아니라서, 아이작은 초조해졌다. 그 사람을 둘러싼 사람들이 내미는 선물은 모두 좋은 것이었고, 자신은 구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것이었다.

고작 교환권 몇 백 장을 모아 NPC에게 가져가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이벤트임에도. 아이작의 손에 들린 것은 교환권 3장으로 바꿀 수 있는, 일회용 소모 아이템일 뿐이었다. 가장 저렴하고 쓸모없는 기본 아이템. 아무런 옵션이 붙지 않은 평범한 사탕. 버츄얼 유저는 맛이라도 느낄 수 있다지만, PC유저인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을.

아하하, 아니라니까요. 저는 정말.. 세상에, 아이작!”

누군가의 질문에 웃으며 대답하던 비숍의 눈에, 멀찌감치 떨어져 우물쭈물하고 있는 아이작의 모습이 보였다. 비숍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웃으며 인사를 하고, 다급한 걸음걸이로 아이작을 향해 다가갔다.

이게 뭐예요? 온통 상처투성이네. 장비도 다 깨졌고. 혼자 필드에 나갔던 거예요? 나를 부르지 그랬어요. 마법사는 방어력도 약해서 위험한데. 아이작도 얼마 전에 티어가 올랐잖아요. 이젠 죽으면 티어다운 위험도 있어서 조심해야 해요.”

비숍은 아이작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으며 눈높이를 맞췄다. 어린아이의 얼굴에 속상해 죽겠다는 표정이 떠오른 것이 보였다. 찢긴 옷, 한쪽 손에 들린 것은 반쯤 부러진 스태프. 포션중독 디버프. 무리하게 혼자 사냥을 했던 것이 분명해서, 비숍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아이작의 상처를 치료하며 말을 걸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나를 불러요. 난 아이작이 나한테 의지해주는 게 기쁘니까. 혹시 퀘스트 때문에 그런 거예요? 내가 도와줄까요?”

아이작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아직 레벨이 낮은 아이작은, 아무리 상처가 깊어도 비숍의 힐링 한 번으로도 HP를 전부 회복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자신에게 충분히 많은 것을 가르쳐줬으나, 자신은 여전히 한심한 실수만을 반복했다. 상대의 속성을 알아보는 법, 조금 더 빠르게 캐스팅하는 법, 정확한 범위를 지정하는 법, 가장 효율적인 도핑 타이밍.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을 몇 번이나 들었음에도, 자신은 한 가지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인벤토리에 있던 포션과 음식을 모두 동내고, 그 사람이 주었던, 지금까지 아끼고 아껴뒀던 돈을 긁어모아 장비 수리비와 포션 비용으로 다 써버렸다. 하루 종일 필드에서 사냥을 하고, 도망치고, 이리저리 치이며 교환권을 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을 수 있었던 몬스터는 고작 열여섯 마리. 그 중에서 교환권을 드랍 한 것은 고작 세 마리.

아이작은 등 뒤로 숨겼던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손바닥 위에 올라간 것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사탕 하나. 창피함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게 뭐예요?”

“..화이트 데이 이벤트요.. 좀 더 좋은 걸 드리고 싶었는데, 교환권을 드랍하는 몬스터가 너무 세서.. 많이 잡을 수가 없어서..”

비숍은 물끄러미 아이작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언제나와 같이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였다. 아이작은 시선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사탕을 내밀고 있는 손이 덜덜 떨렸다.

.. 조금 더 잡아보려고 했는데요.. 포션도 없고, 장비도 다 깨져서.. 그때 주셨던 돈도 다 써버려서 더 이상 사냥을 할 수가 없었어요. PC로 게임 하시는 건 알지만.. 제가 바꿀 수 있는 아이템이 이거밖에 없어서..”

아이작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목구멍에 끈적하게 눌어붙은 단어가 좀처럼 뱉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말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은 정말 염치도 양심도 없는, 나쁜 사람이 될 테니까.

“..죄송해요..”

아니, 아뇨. 왜 사과를 해요. 나는 너무 기쁜데. , 미안해요. 기분 나빠서 아무 말도 안했던 거 아니에요. 너무 놀라고 감동해서 그랬어요.”

비숍은 사탕을 쥐고 있는 아이작의 손을 마주잡았다. 눈물까지 맺혀있던 아이작은, 그 온기에 움찔하며 어깨를 움츠리고 말았다.

나 주려고 무리해서 사냥까지 다녀온 거예요? 안 그래도 이번 이벤트, 너무 고레벨 유저들한테 맞춰져있어서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아이작이 이벤트 참여하고 싶다고 하면 내가 같이 가줘야지, 같이 가서 딜 사이클도 조금 알려줘야지. 내 멋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아이작이 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는데..”

비숍은 아이작을 끌어당겨 꼭 안아주었다. 온몸에서 따끔거리던 통각은 사라진지 오래였는데도, 아이작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떨었다.

오늘따라 조금 늦네..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혼자서 이렇게 다쳐가면서까지.. 무섭지 않았어요? 아무리 통각이 따끔한 정도라고 해도 데미지가 크면 통증도 클 텐데.. 포션중독 디버프가 걸릴 때까지 포션을 마신 거예요? 그거 속도 울렁거리고 느낌도 이상하고 들었는데..”

투둑, 결국 아이작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아이작을 안았던 팔을 풀어준 비숍은, 소매로 아이작의 눈물을 닦아주며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울지 말아요. 뭐가 미안해요. 아이작이 저를 생각해줬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기쁜걸요. , 정말 기뻐요. PC유저라서 너무 아쉬울 정도로. 이 사탕은 안 먹고 남겨둘게요. 클로즈베타가 끝나기 전에, 버츄얼 모드로 들어가서 직접 먹어볼게요. 그래도 되죠?”

“....”

훌쩍, 울음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에 비숍은 작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아이작이 건넨 사탕은 비숍의 인벤토리 첫 번째 칸을 차지했다.

울지 말아요. 저도 아이작한테 선물을 주고 싶어요. 화이트데이 교환 아이템은.. 레벨 제한 때문에 아직 아이작에겐 필요 없을 테니까, 인벤토리만 차지할 것 같고. , 스태프가 망가졌네요. 새 스태프를 구해줄게요. 저랑 같이 시장에 가요.”

? , 아니에요. 그런 건..”

아하하, 괜찮아요. 부담 갖지 말아요. 제가 꼭 주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겨우 스태프 하나로 퉁치는 것도 미안할 만큼 기쁜걸요.”

비숍은 몸을 일으키며 아이작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이작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비숍의 손을 잡았다. 아직 어린아이의 모습인 아이작의 손은, 비숍의 손 안에 폭 파묻혀버렸다.

, 라이조 솜사탕 먹어봤어요? 버츄얼 모드인 사람들은 다들 좋아하더라고요. 그것부터 사먹으러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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