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라이/판타지au] [Homunculus] - 10
스무 살. 어느 모로 보나 어엿한 성인이 되는 나이이고, 대부분의 청년들이 어린티를 벗고 제법 사내티를 내게 되는 나이였다. 그러나 라이퀴아는 여전히 소년처럼 앳된 외모와 성품을 벗지 못했고, 여전히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사람들을 축복하고, 글로리아의 번영을 기원했으며,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모든 이들이 차기비숍에게 기꺼이 고개를 숙이고, 그의 발치에 꽃을 뿌렸다. 그는 언제나 웃으며 가장 탐스러운 꽃 한 송이를 주워들었다.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에서 바람개비처럼 팔랑팔랑 돌아가던 꽃송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가곤 했다.
그에게서 꽃을 받아들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창백하고 긴 손가락이 그의 손을 감싸 쥐고, 꽃을 넘겨받아 라이퀴아의 귓가에 꽂아준다. 라이퀴아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큰 상대를 올려다보며, 가장 환하고 무방비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이슬레이.
밝은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면, 이슬레이는 라이퀴아의 손을 잡으며 나직하게 대답했다.
그래, 라이퀴아.
두 사람은 하루 중 대부분을 붙어있었다. 차기 비숍과 차기 아크메이지라는 지위는 날이 갈수록 공고해졌고, 그에 따라 그들이 해야 할 공부나 배워야할 일들은 점차 늘어갔다.
수완이 좋고 요령이 있는 이슬레이는, 라이퀴아가 해야 하는 일의 대부분을 자신이 자발적으로 떠맡았다. 뿐만 아니라 비숍의 일을 돕고, 글로리아 내부의 일 곳곳에도 관심을 보이거나 주의를 기울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벌써부터 이슬레이가 다음 세대의 최고 권력자가 되고자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으며, 라이퀴아보단 이슬레이에게 줄을 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불미스러운 소문이 돌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이슬레이에게 집중되었으나, 비숍도 라이퀴아도 그에 대해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는 않았다. 다만 비숍은 아주 가끔씩, 일이 너무 고되진 않은지 걱정하고 무리할 필요는 없다며 말해줄 뿐이었다.
두 사람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 어린 성직자나 마법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 중 일부는 뒤에서 혀를 차거나 험담을 하고, 두 사람을 품위 없다고 깔보거나 업신여기는 일도 종종 있었다. 이슬레이는 대부분 목소리를 놓치지 않았으나, 그에 일일이 반응하지도 않았다. 다만 심하게 거슬리는 말을 한 사람은 기어코 찾아내어 톡톡히 ‘성질을 부렸’기 때문에, 대놓고 두 사람을 빈정거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웃기지도 않지, 정말.”
취침시간이 훌쩍 지났으나, 얌전히 잠자리에 들지 않은 사람들은 제법 많았다. 등잔 하나에 의지해 부족한 공부를 하는 이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침실이나 비어있는 방을 찾아들어가 낮 동안 하지 못한 대화를 나누거나, 불만을 토로하거나, 밀회를 즐기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무리의 청년들은 창고에서 가져온 포도주를 돌려 마시며 창문 앞에 둘러앉아있었다. 창을 등지고 앉은 청년의 느슨하게 내려묶은 머리채가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전하, 어인일로 마음이 상하셨나이까.”
그들 패거리에서 나름 우두머리로 행세하는 그에게, 친구들은 장난을 섞어 존칭을 쓰고 왕처럼 취급하곤 했다. 그도 놀림을 받을 때마다 발끈하거나 짜증을 내긴 했으나, 진심으로 화를 내거나 나무라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는 이 글로리아에서 성직자들이 가지는 권력의 크기를 알고 있었으며, 그 별명이 무색하지 않은 지위에 오르고 싶다는, 상당히 구체적인 야심도 가지고 있었다.
“라이퀴아 말이야.”
이 도시에서 가장 귀한 청년의 이름에, 그들은 저도 모르게 긴장하며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그 모습이 영 마뜩찮아서, 말을 이어가는 목소리는 점점 더 퉁명스러워졌다.
“난 그 놈이 영 보기 싫어.”
“또 왜. 이슬레이랑 붙어먹는 것 때문에 그래? 하지만 그런 놈들이야 널리고 널렸는걸. 우리 동기들만 해도.. 아, 물론 마법사랑 눈 맞은 경우는 거의 없다지만.”
“그것도 있지만.. 한심하잖아. 남들은 밤을 새가며 공부하고, 저 밑에 한심한 종자들은 맞아가면서 일을 배워. 그런데 그놈은 뭐야? 난 그녀석이 단 한 번도 도서관에서 밤을 새는 꼴을 본 적이 없어.”
포도주병이 바닥을 보였다. 각종 의식에 사용되는 포도주들은 도시 바깥에서 공수해오는 특등품이었으나, 그 관리는 언제나 허술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포도주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저장고에 밤을 틈타 숨어들어, 몰래 한두 병을 꺼내오는 것쯤은 어려울 것도, 크게 문제가 될 것도 없었다.
“그놈이 우리보다 잘난 거라곤 비숍님이 바깥에서 직접 데려온 아이라는 것뿐이야. 운이 좋아서 우연히. 그것뿐이라고. 그런데 그것만으로 비숍의 후계자가 되고, 글로리아 본성에 살면서, 그 많은 특권들을 누리고 있단 말이야.”
연녹색 눈동자에 이채가 어렸다. 그가 생각하기에, 라이퀴아를 끌어내리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비숍이 아무리 총애하는 제자라고 할지라도, 치밀하고 꼼꼼한 차기 권력자의 연인이라고 할지라도 마찬가지였다.
글로리아는 많은 부와 명예를 신앙과 환상 위에 어설프게 쌓아올린 도시였고,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 규모에 비해 모든 것은 허술하고 연약하기 짝이 없었으며, 그만큼 무너지기도 쉬웠다. 눈치가 빠른 자들은 이를 잘 알고 있었으며, 자신의 손에 쥔 알량한 것을 놓치고 싶지 않은 이들은 더욱 요란하게 호들갑을 떨고, 작은 이변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거창한 것도 필요 없다. 아주 약간의 흠결만 만들어두면, 라이퀴아는 자연스럽게 내쳐질 것이다. 누구나 이상하게 생각할 만큼 뚜렷하고 알기 쉬운 흠결 하나면 된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포도주병을 창틀에 내려놓았다. 빈 병을 달빛이 가득 채웠다.
그는 평소 마법에 관심이 많았고, 그것을 나무라거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법이나 신성력은 글로리아에서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하는, 가장 기본적인 능력 중 하나였다. 두 가지 모두에 재능과 흥미를 가지고 있다면, 또한 권력이나 명예에 대한 욕심도 가지고 있다면, 그 모두를 손에 넣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연했다.
마법탑은 마법사들이 다양한 연구와 실험을 하는 곳이었고, 그만큼 다양한 서적과 귀중하고 위험한 재료나 약초들이 적지 않게 구비되어있었다. 창고 앞은 언제나 경비병이 지키고 있었으나, 그 누구도 그를 막지는 않았다. 그는 나름대로 지위가 있는 인물일 뿐만 아니라, 성품이 온순하지 않기로 유명했고, 사전에 경비병들에게 쥐어준 액수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창고 안은 다양한 상자와 자루, 병들로 가득 차있었지만, 그는 조금도 망설이거나 두리번거리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창고 안쪽에는 발견하기 힘든 문 하나가 숨겨져 있었다. 그는 바닥의 타일 하나를 들어내고, 그 안에 준비해온 시약을 꼼꼼히 부었다. 타일 안쪽에 그려진 문양을 따라 시약이 흘러들어가자, 창고 구석의 벽이 일렁였다.
그는 몸을 일으켜 일렁이는 벽을 손으로 짚었다. 돌로 만들어진 벽이었으나, 손끝에 느껴지는 감촉은 거친 나무의 그것이었다. 천천히 문을 더듬어나가던 손끝에 손잡이가 만져졌다. 손끝에 힘을 줘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벽의 일부가 갈라지며 그 너머가 드러났다.
문 너머에 숨겨진 방은 창고에 비해 크기도 작았고, 그만큼 보관하고 있는 물품의 개수도 적었으며, 초라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대한 창고 수 개를 합친 것보다 몇 배의 가치를 가진 물건들이 보관되어있었다.
이 방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장소였으나, 이 방의 존재를 아는 이들은 이곳을 ‘사룡의 둥지’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글로리아의 성직자와 마법사들은 왕궁과 왕가로부터 다양한 의뢰를 받아 처리해왔지만, 그중 가장 중요하고 위험한 것은 사룡 토벌이었다. 사룡의 사체는 비늘과 발톱, 뿔은 물론이고 피 한 방울까지도 강력한 마법, 혹은 저주의 재료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각별한 관리가 필요했다.
하얀 손이 가볍게 선반을 훑었다. 선반 위에 일렬로 늘어선 작은 병들은 약간의 점성을 가진 검은 액체로 가득 차있었다. 그는 품안에서 비슷한 액체로 채워진 병을 하나 꺼내, 선반위의 작은 유리병과 바꿔들었다.
사룡의 피. 사룡의 저주를 위한 준비물 중 하나는 준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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