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라이] 2017.04.02 롤겜만화 전력 6회 - 초콜릿
“라이퀴아!”
텔레포트 이펙트가 사라진 자리엔 어김없이 이슬레이가 서있었다. 라이퀴아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 왔냐.
“뭐 하고 있었어?”
“그냥 새로 공지 뜬 거 뭔가 보고 있었지. 키트 확률 에러났다며?”
“응? 아, 그래? 어쩐지 안 나오더라니.”
“미친. 그새 샀냐.”
“아하하.”
이슬레이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라이퀴아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던 것도 잠시, 키트 내용물에 대한 호기심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었다.
“뭐 나왔어?”
“공지에 뜬 의장 말고는 별거 없더라고. 다 지난번에 이벤트로 나왔던 아이템들 이름만 바꿔서 재탕이야.”
“와, 역시 존나 똥망겜이네 에스페라. 그래서 의장은 뽑았어? 보여줘. 귀여운 것 같던데, 실물 괜찮으면 나도 한 키트 까보게.”
이슬레이는 생긋 웃더니 라이퀴아에게 거래신청을 걸었다. 라이퀴아가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거래창에는 차곡차곡 키트의 내용물이 올라오고 있었다. 시계 토끼의 정장. 귀여운 고양이의 냥젤리. 명랑한 강아지의 귀와 꼬리 세트, 그리고 전산오류로 인해 현재 0.03%의 확률로 뽑히게 되어있으며, 내일 진행될 점검에서 확률을 정상화하겠다는 공지가 뜬 요정나라의 날개옷...
“와, 미친. 진짜 뽑았네. 아니 근데 이렇게 거래창으로 보여주지 말고 니가 함 입어봐.”
“응? 보여주는 거 아닌데. 너 주는 거야.”
“엥?”
이슬레이는 신규 키트에서 나오는 의장용 아이템에 이어, 소모용 아이템들을 거래창에 올리기 시작했다. 포션의 역할을 하는 과자나 간식거리들, 악세서리, 단기 버프용 음식, 일회용 이펙트 아이템, 기타 등등. 확실히 지금까지 각종 이벤트로 풀렸던 아이템에서 색이나 간단한 장식만 바꾸고, 이름만 조금 바꿔 재탕한 아이템들이 많았다. 아이템에 딸린 부가적인 설명을 읽지 않으면 구분이 어려울 만큼.
“미친, 존나 많이 깠네. 이걸 왜 나 줘?”
“다 중복으로 나온 것들이야. 나 키트 운 꽤 좋은 편이거든. 요정옷도 두 개 뽑았어. 봐, 여기 하나 더 있지. 내가 입지는 않을 거지만.”
“미친놈아, 그럼 그냥 팔아! 이만큼이면 하우징 하나를 사겠다. 아니, 입지도 않을 거 키트는 왜 깠대?”
“한정판이잖아, 안 써도 먹어는 둬야지. 사과하는 거니까 그냥 받아주면 안될까? 오늘치 사과라고 생각하고. 응?”
이슬레이는 꾸역꾸역 라이퀴아에게 아이템을 안겨주고, 환하게 웃어보였다. 인벤토리가 모자라다는 라이퀴아의 말에, 창고 NPC 앞까지 부득부득 쫓아가 온갖 아이템들을 가득 건네준 뒤였다. 아, 인벤토리 모자라면 확장권 사줄까? 이슬레이의 그 말에 라이퀴아는 질색을 했다. 이게 아주 돈을 길바닥에 뿌리네?
“에이, 라이퀴아 네가 어떻게 길바닥이야?”
이슬레이는 가벼운 소리를 흘리며 웃었다. 다른 애들이랑 놀 거지?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내일 또 사과하러 올게, 라이퀴아. 아, 아이템은 다른 애들 주지 말고 꼭 네가 쓰기야?
라이퀴아는 이슬레이를 붙잡지 않았다. 텔레포트 시전 이펙트와 함께, 이슬레이는 사라졌다. 라이퀴아는 아직 약간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멍하니 서 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곤 에피타이저의 하우징으로 걸음을 옮겼다.
***
하우징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라이퀴아는 자연스럽게 소파로 걸음을 옮겼다. 소파 팔걸이를 베고 길게 드러누운 라이퀴아는 인벤토리를 열고, 두서없이 들어찬 아이템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토끼 브로치가 달린 정장도, 고양이 발모양 장갑도, 강아지귀 머리띠와 꼬리도 생각보다 훨씬 귀여웠다. 라이퀴아는 한참동안 의장 아이템을 가지고 놀다가, 소모품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걸 언제 다 정리한담. 한숨이 나올 만큼 아이템 가짓수는 많았다.
라이퀴아는 인벤토리에서 초콜릿과 사탕, 과자와 같은 군것질거리들을 왕창 덜어냈다. 체력회복 포션 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아이템들이었지만, 라이퀴아에게 그런 포션은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인벤토리를 정리하며 간식으로 조금씩 까먹을 생각이었다.
인벤토리 정리는 생각보다 한참 걸렸고, 테이블 위에 쌓여있던 간식도 조금씩 사라져갔다. 별다른 생각 없이 테이블 위에 놓인 상자를 집어들던 라이퀴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커다란 리본이 달린 하트모양 초콜릿 상자. 아, 이거 올해 나왔던 발렌타인 이벤트 아이템 재탕이네. 와, 양심도 없지 몇 달 전에 했던 아이템을 고대로 재탕을 하냐.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라이퀴아는 문득 테이블 위를 보았다. 집어든 상자와 리본의 색만 다를 뿐, 똑같이 생긴 초콜릿 상자 하나가 더 보였다.
“엥. 이거 이번 발렌타인 템인데. 템 줄때 섞여 들어왔나? 아니 얜 몇 달 동안 인벤에 이걸 썩히고 있었대?”
라이퀴아는 잡았던 상자를 밀어두고, 올해 발렌타인 이벤트로 풀렸던 초콜릿 상자를 끌어당겼다. 아, 이거 이벤트 이름이 뭐였더라. 숨겨진 마음이었나. 바닥에 메모지를 숨기는 기능이 있는 아이템이었다. 한 계정 당 하나씩만 배포되었던 아이템. 사랑하는 사람에게 비밀스러운 당신의 속마음을 전해보세요! 이벤트 문구가 오질나게 구리고 오그라들었던 기억이 났다.
라이퀴아는 초콜릿 상자를 열었다. 이건 먹지 말고 내일 돌려줘야지. 라이퀴아의 손가락이 초콜릿 사이를 헤집었다. 바닥에 깔린 메모지를 집어 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음대로 봐도 되려나 싶었지만, 뭐 어때. 이슬레이가 이런 일로 짜증을 낼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설령 짜증을 낸다고 해도, 결국은 이런 실수를 한 이슬레이 잘못이다.
아이템은 수령 즉시 메모를 남기게 되어있었다. 나는 그때 뭐라고 메모를 남겼더라. 딱히 쓸 말이 없어서 그냥 마침표 두 개 찍고 말았었지. 에피타이저에게 줬더니 와, 메모 존나 성의 없는 거 보소. 하면서 자기 초콜릿을 맞교환했다. 뒤늦게 달려온 타이난은 그 사실에 시무룩해졌지만 결국 제 초콜릿을 라이퀴아에게 선물했다.
솔직히 뭐라고 썼는지 궁금할 만 하잖아. 그 컨셉충이. 라이퀴아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메모를 펼쳐들었다. 후딱 읽어보고 다시 바닥에 잘 깔아두면 눈치 못 채겠지. 하지만 라이퀴아는 메모의 내용을 본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미안해, 라이퀴아. 보고 싶다. -02.14. 00:15-]
라이퀴아는 메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메모를 입력한 시간. 발렌타인 이벤트가 시작되고 15분이 지난 시점. 발렌타인데이가 되고 15분이 지난 뒤에 게임에 접속했을 수도 있겠지만, 15분 동안 고민하다가 이런 메모를 적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후자가 더 현실성 있다고 생각했다. 그 새끼는.. 조금, 인생을 갈아 넣어가며 게임에 매달리는 겜창이니까.
15분 동안 고민하고 쓴 메모가 결국 이런 내용이란 말이지. 라이퀴아는 조금 찝찝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이 메모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읽었다고 말을 해줄까. 아니면 펼쳐보지 않은 척, 거래할 때 섞여 들어온 것 같다고 내일 돌려줄까. 아니면 그냥 다른 아이템과 섞어서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먹어버렸다고 해버릴까.
이젠 이것이 실수인지 아닌지도 모를 지경이 되어버렸다. 왜 그때 바로 안 주지 않고, 몇 달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그냥 주긴 민망하고, 이렇게 은근슬쩍 섞어주려고 기회만 보고 있었나? 만약에 내가 발견 못했으면 어떻게 하려고? 설마 이거 주려고 키트 깐 건 아니겠지? 걔 요정옷만 두 벌 있던데. 0.03%가 두 개였다고. 설마 이거 하나 주려고 그만큼 키트를 깠겠어? 설마? 설마?
라이퀴아는 찝찝한 마음을 애써 외면하며 일단 메모지를 원래상태로 되돌리고 상자의 뚜껑을 덮었다. 어떻게 반응할지는, 내일 이슬레이가 사과하러 찾아올 때까지 조금 더 고민해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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