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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라이/판타지au] [Homunculus] - 02


짜악.

비숍은 잔을 들어 올리려던 손을 멈췄다. 누가 들어도 명백한 소리였다. 이런 싸구려 여관에선, 몇 번이고 울려도 이상하지 않을 소리이기도 했다. 비숍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잔뜩 화가 나 씩씩거리고 있는 사내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제 뺨을 가리고 있는 작은 소년을 발견했다.

이 거지새끼, 제대로 할 줄 아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게!”

사내는 다시 한 번 손을 치켜 올렸다. 소년은 눈을 질끈 감은 채, 품안의 꾸러미를 더욱 힘주어 끌어안을 뿐이었다.

뭐야!”

어린아이에게 너무하시는 것 아닙니까.”

낯선 목소리에, 소년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난생 처음 보는 남자가, 사내의 손목을 움켜쥔 채 자신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갈 길 가쇼! 내가 내 돈 주고 고용한 애요, 당신이 신경 쓸 문제가 아니지!”

당신이 설령 이 아이의 부모라고 해도 비킬 수 없습니다.”

소년은 처음 보는 남자의 등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남자는 단호한 몸짓으로 사내의 팔을 뿌리쳤고, 사내는 씩씩거리다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는 소년을 향해 내일부턴 이 여관에 발을 들일 생각조차 하지 말라고 윽박을 지른 뒤, 위협적인 몸짓으로 등을 돌려 주방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남자는 소년을 향해 몸을 돌렸다. 소년은 여전히 더러운 천 조각으로 감싼 작은 꾸러미를 품에 안은 채, 멍하니 남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바짝 마른 아이의 발갛게 부어오른 뺨이 안쓰러워, 남자는 속으로 혀를 차며 천천히 손을 뻗었다.

..”

괜찮아. 때리려는 것이 아니란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당황한 아이가 반사적으로 움츠렸던 어깨를 펼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려주었다. 아이가 머뭇머뭇 다시 남자를 올려다보자, 남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조심스럽게 아이의 뺨에 손을 대었다.

새삼 소리를 내어 기도를 올릴 필요도 없었다. 남자의 손에선 은은한 빛이 났고, 그 손으로 아이의 여린 뺨을 쓰다듬자, 붉게 달아올랐던 손찌검의 자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남자의 행동을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몇 마디의 수군거림이 일었다. 뭐야 저건? 성직자인가? 글로리아 성직자와 비슷한 것 같은데. 에이, 설마. 글로리아에서 이런 깡촌까지 내려올 리가.

일어설 수 있겠니?”

.. , .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소년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남자는 여전히 다정한 표정으로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소년을 따라 몸을 일으키며 손을 내밀었다.

집까지 바래다줄게.”

? , 아뇨, 괜찮아요. 괜찮은데..”

내가 걱정이 되어 그런단다.”

이토록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아이. 보호자가 없어도 문제였고 있다면 더욱 큰 문제였다. 이 너른 땅에서 고통 받는 아이들이야 시선 닿는 자리마다 웅크리고 있었고, 아무리 글로리아라고 해도 모든 아이들을 거두고 돌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

아이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남자는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아이가 자꾸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눈을 피해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는 작은 머릿속이 그대로 읽혀버렸기 때문에. 부드럽지만 단단하게 얽어 쥔 손아귀에, 아이는 당황한 얼굴을 한 채 손끝을 꼼질거릴 뿐이었다.

아이가 남자를 이끌어 도착한 곳은 이 더운 계절에는 쓸 일이 없을 허름한 창고였다. 아이는 머뭇거리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 놔주세요.”

?”

문을 안쪽에서 잠가서.. 여기서는 못 열어요. 창문으로 들어가야 해요.”

한 손은 남자의 손에, 한 손에는 여전히 낡은 꾸러미를 움켜쥔 아이는 고갯짓으로 벽의 한 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환기를 위해 높은 곳에 뚫어놓은 작은 구멍과, 그 바로 아래까지 위태롭게 쌓아둔 온갖 잡동사니들이 보였다.

남자는 아이의 손을 놓아주었고, 아이는 꾸러미를 이로 문 채 잡동사니 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위태로운 곡예를 하듯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간 아이는 작은 구멍 사이로 모습을 감췄고, 곧 문 안쪽에서 무거운 빗장을 풀어내는 소리가 들렸다.

창고의 문이 열리자, 더운 열기가 훅 끼쳐왔다. 아이는 문틈을 살짝 벌려놓은 채, 도망치듯 창고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타다닥, 빠르게 멀어지는 가벼운 발소리를 들은 남자는 조심스럽게 문을 당겨 열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더운 창고 안에는, 구석에 웅크리고 누운 어린아이가 한 명 더 있었다. 남자는 아이들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아직도 많이 아파?”

괜찮아.. 미안해, 나도 나갔어야 하는데..”

무슨 말이야, 그게. 너 안 아플 때까지는 나 혼자 어떻게든 해볼게. 배고프지? 오늘은 더 큰 걸로 받아왔어. 나눠먹자.”

아이는 한 번도 품에서 떼어놓은 적 없던 꾸러미를 풀어냈다. 단단하고 질긴 빵 덩어리를 찢어내는 아이의 야무진 손을 바라보던 남자는, 발소리를 내며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얘들아.”

남자를 이곳까지 안내했던 아이는 몸으로 다른 아이를 막아섰다. 남자는 경계하는 아이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 쥐고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말아라. 난 네 친구가 더 이상 아프지 않도록 도와주려는 것뿐이란다. 나를 믿어주지 않겠니?”

“..저는 돈이 없는데요.”

돈은 필요 없단다. 내가 너희들을 도울 수 있게 해주렴.”

아이는 머뭇거리며 다른 아이를 돌아보았고, 바닥에 기운 없이 누워있던 소년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내키지 않는 얼굴로, 남자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은 채 마지못해 비켜섰다.

남자는 아이의 이마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입안으로 짧은 기도문을 외우자, 남자의 손끝에 푸르스름한 빛이 어렸다. 아이는 눈을 크게 뜬 채 남자와 소년을 바라보았고, 소년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잠꼬대처럼 웅얼거렸을 뿐이었다.

?”

.. 왜 그래?”

안 아파!”

기운 없이 누워있던 아이는 벌떡 몸을 일으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먹을 쥐었다 펴보고, 제 이마를 짚어보고, 누워있던 자리에서 완전히 일어서기까지 했다.

진짜야! 안 아파! 아니, 아프기 전 보다 훨씬 좋아!”

, 진짜야? 안 아파?”

소년은 아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안심한 나머지 다리가 풀려,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울컥, 아랫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참는 아이에게 소년은 허둥거리며 다가갔다.

, 아이자악, 또 왜 그래, 울지마아.. 나 괜찮다니까? 진짜야, 진짜 안 아파아..”

.. ..행이야, 자쿠스카..”

남자는 아이작과 자쿠스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아이들의 뺨을 적시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두 아이는 모두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사합니다, 성직자님.”

고맙..습니다.”

얘들아.”

남자는 아이들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는 다정함이었다.

나와 함께 가지 않겠니?”

“..?”

?”

아이들은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온갖 더러운 꼴, 험한 꼴을 보고 겪으며 살아가는 고아들은 어른의 말을 잘 믿지 않았다. 남자는 여전히 끈기를 가진 채, 손을 뻗어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더 이상 배가 고프지 않아도 된단다. 아프면 치료를 받을 수 있고,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공부도 가르쳐주마.”

아이작과 자쿠스카는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고, 다시 남자를 쳐다보았다. 어린 눈을 모아 나름대로 상대를 가늠해보려는 모습에, 남자는 다시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글로리아의 비숍이란다.”

글로리아. 성직자들의 총본산. 아이들은 눈을 깜빡였다. 자신을 비숍이라 소개한 남자는, 아이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와 함께 글로리아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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