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퀴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라이퀴아는 눈을 반쯤 떴다. 아직 졸음이 가득한 얼굴로 두 손을 앞으로 뻗자, 이슬레이는 다정하게 양손을 잡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축 늘어진 몸이 그 자세 그대로 천천히 떠올랐다.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침대가 되었던 커다란 해파리는, 이슬레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너울거리며 사라져버렸다.
“낮잠 자고 있었어?”
“으응.. 다녀왔어? 이슬레이.”
“이젠 겁도 안 나는 모양이네.”
“히히.”
라이퀴아는 잠결에 이슬레이의 어깨에 이마를 부비며 웃었다. 이슬레이는 라이퀴아를 품에 안은 채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
갈퀴나 지느러미가 없는 라이퀴아는 물속에서 빠르게 움직일 수 없었으므로, 자신이 곁에 없을 때면 늘 돌고래 두 마리가 그를 따라다니며 이동을 돕도록 했다. 혹시 위험에 처할까 싶어 보호를 명목으로 범고래도 한 마리 붙여두었다. 주변을 슬금슬금 맴돌던 그들은 이슬레이의 시선을 받자, 꾸벅 고개를 숙이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돌아갈까?”
“응.”
라이퀴아는 이슬레이의 목에 팔을 감았다. 깊은 바다 속에는 햇빛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이슬레이는 라이퀴아를 위해 비교적 얕은 곳에 있는 별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라이퀴아는 이슬레이가 없을 땐 구슬대신 엄지손가락만한 진주를 가지고 놀고, 돌고래의 등을 타고 끝없이 펼쳐진 산호밭을 구경하고, 손바닥보다 큰 조개껍질을 주워 모으고, 거대한 해파리 위에 누워 낮잠을 잤다.
그렇게 한참을 혼자 놀고 있으면, 자신이 있는 곳을 어떻게 알았는지 이슬레이가 자신을 찾아왔다. 이슬레이는 매번 돌고래들을 돌려보낸 뒤, 직접 라이퀴아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라이퀴아를 바다로 데려온 첫날, 이슬레이는 그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다. 천을 많이 사용하고 면적이 넓은 인간의 옷은 물속에서 생활하기엔 적합하지 않았으므로, 실을 꼬아 만든 인어의 옷을 내어주었다. 이슬레이는 낯선 복식 탓에 난처해하는 아이를 제 침대에 뉘이고 달래, 오랫동안 잠을 재웠다.
둘째 날, 그는 수많은 바다생물들을 불러들여 구경을 시켜주고, 아름다운 산호와 깊은 동굴을, 수면 위에서 쏟아져 들어오며 일렁이는 햇빛을, 거대하고 화려한 궁전을 보여주었다.
셋째 날, 그는 라이퀴아에게 육지로 돌아가고 싶은지 물었다. 라이퀴아는 돌아가고 싶다고 대답했고, 이슬레이는 며칠 동안 기다려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라이퀴아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날부터 이슬레이는 물고기들과 다른 인어들에게 라이퀴아를 맡기고, 하루 종일 바다를 누비다가 해가 질 즈음에야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오늘은, 라이퀴아가 이슬레이를 만난 지 보름째 되는 날이었다.
“오늘은 일찍 왔네. 매일 노을 진 뒤에야 돌아오더니.”
“응. 그렇게 됐어.”
물고기의 뼈를 다듬어 만든 구슬과 진주로 만든 발을 걷어내자, 화려하고 넓은 방이 나타났다. 이슬레이가 지내는 방은 라이퀴아가 지금껏 보아온 어떤 방보다도 크고 화려했다. 아직 자신은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왕의 침실이 이런 모양일까. 라이퀴아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이슬레이의 품에서 벗어나 침대로 헤엄쳐 다가갔다.
라이퀴아가 침대에 걸터앉자, 그의 주변을 한 바퀴 맴돈 이슬레이가 그 곁에 자리를 잡았다. 이슬레이는 그의 시중을 드는 인어들이 비늘과 지느러미를 손질하기위해 다가오려는 것을 손짓 한 번으로 물리곤, 라이퀴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직도 육지로 돌아가고 싶어?”
“응.”
“돌아가면 다시 죽을지도 모르잖아.”
“그건 어쩔 수 없어. 다른 왕자들도 모두 그런걸.”
“나와 함께 바다 속에서 살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럴 순 없어.”
라이퀴아는 이슬레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이슬레이는 한 팔로 라이퀴아의 몸을 감싸 안고, 어깨를 천천히 쓸어주었다.
“육지는 바다에 비하면 너무 좁거든. 그래서 우리는 끝없이 싸워.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
라이퀴아는 이슬레이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눈동자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없으면 다 죽을 거야. 적어도 내 편이었던 사람들은 전부 다.”
이슬레이는 라이퀴아의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뺨이 손끝에 스쳤다. 바다의 왕자로 태어나, 어떠한 정적도 없이 자라온 이슬레이는, 자신의 표정을 숨기는 데에 능숙하지 못했다. 그는 노골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난 네가 죽는 게 싫어.”
떼를 쓰는 듯한 그의 말에, 라이퀴아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나도 죽고 싶진 않아.”
이슬레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라이퀴아의 고집을 억지로 꺾을 생각은 없는 듯 했다. 그는 라이퀴아의 몸을 안았던 팔을 풀고,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워버렸다.
“낮잠?”
“응. 오늘 하루만.”
“그래. 잘 자, 이슬레이.”
라이퀴아는 다정한 손길로 이슬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슬레이는 라이퀴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의 손을 잡아 손등에 입을 맞췄다. 라이퀴아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육지로 데려다줄게.”
“정말?”
“그래. 오늘 밤에 나가자. 대신 아무한테도 이야기하면 안 돼.”
“알았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슬레이는 눈을 감았다. 라이퀴아는 잠든 이슬레이가 깨지 않도록, 얼굴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다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에 손끝이 스쳤다. 닿은 손가락이 조금 간질거리는 것도 같았다.
이슬레이는 오랫동안 잠을 잤다. 그가 깨어났을 땐 이미 늦은 저녁이 다 지나고 있었다. 이슬레이는 라이퀴아의 손을 잡고 궁전을 산책했다. 스스로 빛을 내는 신비로운 광석들이 정원을 밝히고, 물속에선 바다눈이 아름답게 내렸다.
궁전의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모두 라이퀴아에게 보여준 이슬레이는, 다시 침실로 돌아와 옷장의 문을 열었다. 옷장 안엔 이슬레이가 지금까지 모아온 인간의 옷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홍수로 떠내려 온 것들, 배가 난파되며 바다에 잠긴 화물, 항해가 무탈하길 비는 제사를 지내며 바다로 던진 공물 등, 저마다 나름의 사연을 가진 옷들이었다.
이슬레이는 라이퀴아가 바다에 빠졌던 날 입고 있었던 옷을 돌려주었다. 라이퀴아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잠시 자리를 비웠던 이슬레이는, 흑진주와 물고기의 비늘로 장식한 예복을 갖춰 입고 돌아왔다. 인간인 라이퀴아가 보기에는 실오라기 몇 가닥을 걸쳤을 뿐, 여전히 반라인 것과 별 다른 차이가 없었지만.
“나도 너와 함께 갈 거야.”
단순히 해변까지 바래다준다는 말로는 들리지 않았다. 라이퀴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이슬레이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손을 내밀었다.
“너와 함께 육지로 가서, 네가 죽지 않게 지킬 거야.”
“하지만 넌 물 밖에선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잖아.”
“내가 뭐 때문에 지난 며칠 동안, 지느러미가 망가질 때까지 온 바다를 헤집고 다녔다고 생각해?”
라이퀴아는 이슬레이의 손을 잡았다. 이슬레이는 라이퀴아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은 채, 그의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내리눌렀다.
“방법을 찾았어. 절대로 네가 혼자 죽도록 내버려두진 않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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