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하는 뿜이

블로그 이미지
by O.A

TAG CLOUD

  • Total hit
  • Today hit
  • Yesterday hit

'드라마/레전드 히어로 삼국전'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7.10.09
    [레히삼/신선즈/논컾] programming ... 98 / 100 % ■■■■■■■■■□ NAME :: 4
  2. 2017.10.06
    [레히삼/제갈유비&유비제갈(컾성향↓)] 아아, 주군. 당신은 나의 소원까지도 1
  3. 2017.09.30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레히삼)/ 유비제갈&제갈유비] 네가 나온 꿈

[레히삼/신선즈/논컾]

programming ... 98 / 100 %  ■

NAME ::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눈을 떴다. 아직 드림배틀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그러나 그다지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드림배틀은 곧 시작될 것이고, 신선들은 곧 완성될 것이다. 그들은 아직 이름조차 가지지 못했으나, 그도 상관없었다. 그들이 모두 완성되는 순간 그들은 가장 합당한 이름을 가지게 될 것이다.

마더 컴퓨터는 그들에게 신선의 이름을 부여할 것이고, 영웅의 이름을 가진 군주의 선택을 받을 때까지 선계에서 실력을 갈고 닦게 될 것이다. 그는 천천히 신선들의 이름을 되짚어보았다. 제갈량, 서서, 주유, 사마의, 방통.. 그다지 마음에 드는 이유는 없었다.

그가 느끼는 감정은 일종의 오류일 것이다. 그는 그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영웅패와 신선은 군주의 승리를 위해서, 군주가 가진 꿈을 더욱 크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존재들이다. 그들에게 감정이란 가장 불필요한 옵션 중 하나일 뿐이었다.

신선은 주인이 되는 군주와의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인간과 비슷한 외모를 가지게 된다. 또한 그들의 정교하고 방대한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은 인간과 가장 비슷한 사고방식, 감정표현 등의 결과를 도출한다. 그러나 신선의 탄생은 특정한 하나의 감정에 기반을 두며, 그 감정에 지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는 자신이 비롯된 감정을 분석해보려 했다. 그러나 그에게 입력된 지식만으론 스스로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었다. 자신의 프로그램을 면밀히 살피던 그는, 스스로를 버그로 단정했다. 자신에겐 주군의 승리, 차기 옥쇄의 관리자라는 욕망 외에도 다른 욕망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성능을 살펴보았다. 자신은 제법 만족스러운 규격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아마 선계에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성능일 것이다. 만들어지고 있는 다른 신선들의 프로그램도 꼼꼼히 점검했다. 성능이 낮은 신선들은 신경을 쓸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성능이 뛰어난 신선들은 조금 눈에 담아둘 필요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똑바로 마주하고 있었다. 자신의 욕망과 계획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존재 역시 판단할 수 있었다.

그는 몇몇 프로그램을 골라냈다. 자신보단 못하지만 아슬아슬하게 견줄 수는 있을 신선도 있었고, 자신과는 아스라이 멀어 신경 쓸 필요조차 없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눈에 띌 만큼 특이한 모양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신선도 있었다.

차분히 신선들을 골라내던 그의 손이 우뚝 멈췄다.

거대한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을 살피는 그의 감정에 파문이 일었다. 그와 비슷하거나, 조금 뛰어난 정도가 아니었다. 신선이 가질 수 있는 규격 외의 크기와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욕망을 가로막을 가장 큰 적수가 누구일지는 분명해졌다.

이미 거진 완성된 프로그램을 다운그레이드 하거나, 삭제할 수는 없었다. 드림배틀은 지척이었다. 이제 와서 이 거대한 프로그램을 섣불리 건드린다면, 마더 컴퓨터의 운영체계에 어떠한 혼선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었다. 자신의 계획을 위해서라면, 드림배틀 자체에는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

그는 완성 직전의 프로그램에, 아주 약간의 수정만 가하기로 했다.

그는 그 거대한 규격의 신선과, 쳐다볼 가치도 없는 미약한 신선의 프로그램을 열었고 그들의 기반이 되는 감정을 살폈다. 하나는 행복으로부터, 하나는 허무로부터 만들어진 신선들이었다.


허무라..”


딱 알맞은 속성이었다. 그는 두 신선의 감정을 뒤바꿔버렸다. 가장 성능이 떨어지는 신선은 행복을 갖게 되었다. 그는, 혹은 그녀는 열렬히 행복을 쫒게 될 것이나 그 행복을 스스로의 손으로 움켜쥘 능력은 갖지 못할 것이다. 그를 섬뜩하게 만들었던 신선은 허무에 잠기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며, 결코 어떠한 의욕도 스스로의 희망이나 꿈도 품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는 내친김에 다른 신선들의 프로그램을 모두 열었다. 자신감으로부터 태어난 신선에겐 약간의 오만을 집어넣었다. 호기심으로부터 태어난 신선에겐 조금 더 열렬한 탐구열과 함께 자신의 버그를 심었다.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의 손을 거친 그대로, 마지막 코딩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 곧 드림배틀이 시작되면..

그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어렸다.

AND

짤막설정

-버그에 잠식당해서 본인의 욕망과 감정을 제어할 수 없게 된 제갈량..

-옥쇄의 관리자로서의 능력으로 서서(버그)를 만들어내고 '돌아와서 전부 얘기해줄게'라는 약속을 지키게 함

-그런데 거기에 사로잡혀서 옥쇄 관리를 그만둬버리고.. 선계는 망가지고 인간계에선 인간이 된 영웅패들이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음(시간은 며칠 안 지나서 아직 인간세상엔 큰 문제는 안 생김)


**


[레히삼/제갈유비&유비제갈(컾성향↓)]

아아, 주군당신은 나의 소원까지도


**


도원관은 관원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도 좀처럼 조용해지지 않았다. 모두가 힘을 합쳐 도장을 청소하고, 어질러진 것들을 치우고, 저녁을 먹은 뒤 순번을 정해 씻고 나면 해는 완전히 지고, 별이 떠오르기 일쑤였다.

유비는 자신의 침대에 멍하니 누워 있다가, 온 몸을 늘리며 기지개를 켰다. 침대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온몸을 버둥거리던 유비는, 문이 부서져라 밀치고 들어오는 공손찬에게 놀라 그대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유비!!”

으악! , 뭐야! 왜 그래, 찬아?”

얼른 나와 봐, 조운이 이상해!”

? 조운이?”

바닥에 찧은 엉덩이를 문지르던 유비는, 공손찬의 말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조운은 도장 한복판에 쓰러져있었다. 그를 부축해 바로 눕힌 장비도, 황충과 마초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나마 관우는 정신을 잃지는 않았으나, 벽에 기대앉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얘들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관우, 너 괜찮아? 왜 그래!”

.. 형님..”

유비는 관우의 이마를 짚어보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발을 동동 구르던 공손찬은 스승님께 전화라도 해보겠다며 어디론가 달려가 버렸다. 노식은 하필 어제 저녁부터, 엘리자베스를 만나러 간다며 자리를 비운 것이다.

, 아무래도, 선계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형님..”

선계? 제갈량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거야?”

.. 저희, 저희 영웅패들, 한테.. 한꺼번에, 문제가 생겼, 다는 건.. ..”

관우는 죽을 것처럼 기침을 뱉어낸 뒤, 유비의 품 안에서 정신을 잃었다.

 

**


유비는 선계의 문을 여는 열쇠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 열쇠를 가지고 있던 것은 서서와 제갈량에 대한 추억 때문이었다. 결코 다시 사용하기위해 보관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제갈량이 종종 그리워지긴 했으나, 결코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기를 바란 적은 더더욱 없었다.

허공에 열쇠를 꽂고 돌리자, 투명한 문이 저항 없이 열렸다. 문 안으로 들어선 유비는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고 크게 당황했다. 선계는 녹음이 우거져있고, 빛을 품은 아름다운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었다. 그러나 발에 밟히는 잔디는 누렇게 시들었으며, 하늘은 어둑하고 불쾌한 색을 띠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상한 나뭇잎들이 비처럼 쏟아지고 흩날렸다.

, 제갈량!”

유비는 급히 달려 나가며 제갈량을 불렀다. 제갈량은 옥쇄의 관리자이니 옥쇄에서 멀리 떨어져있진 않을 것이다. 기억속의 옥쇄만큼 밝게 빛나는 빛은 찾을 수 없었으나, 그 거대한 구조물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


버려진 옥쇄는 폐허 같았다. 그 안에서 선계와 인간계를 살펴보고 관리해야 할 제갈량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유비는 옥쇄를 휘감은 채 딱딱하게 말라붙은 덩굴을 만져보았다.

제갈랴앙. 내 이야기 듣고 있어?”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비의 눈이 커졌다. 뻣뻣하게 굳은 몸을 억지로 돌리고,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힘겹게 움직였다. 고작 몇 발자국 걸었을 뿐인데도, 조금 전까진 발견하지 못한 두 사람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완만한 비탈에 앉아있는 서서와, 그녀의 무릎을 벤 채 가볍게 눈을 감고 있는 제갈량이었다.

.. 듣고 있어.”

거짓말. 또 잤지?”

아냐. 듣고 있어. 그러니까 계속 말해줘. 인간계에서 또 뭘 봤어?”

서서는 맑은 웃음을 터트리며 제갈량의 가지런한 앞머리를 다시 한 번 정리했다. 온 풀밭이 누렇고 검게 시들고 죽어가고 있었으나, 두 사람이 앉고 누운 그 자리만큼은 여전히 푸른 풀이 자랐고, 꽃이 피어 있었고, 희고 은은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또 뭐가 있었냐면..”

제갈량!”

유비는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 제갈량은 나른한 동작으로 손을 들어올려, 제 머리를 매만지는 서서의 손을 밀어냈다. 그는 감은 눈을 천천히 뜨고, 조금 멍하게 보이는 시선으로 유비를 올려다보았다.

이게,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제갈량!”

“..주군.”

유비를 바라보던 제갈량은, 문득 손을 들어올려 제 눈을 가려버렸다. 입꼬리가 가늘게 떨리다가 자조적인 미소를 머금었디.

난 결국 서서뿐만 아니라 당신도 만들어버린 건가요. 그것만큼은 참아보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무슨 소리야? 뭐가 어떻게 된 건데. 설명 좀 해줘, 제갈량. ?”

하하. 정말로 진짜 같네요. 이렇게까지 잘 만들 필요는 없었을 텐데, 나도 참.”

제갈량은 서성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 그들을 감싼 빛이 한차례 일렁였다. 유비는 제갈량의 말을 전부 알아듣지는 못했으나, 그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당신은 버그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주군. 여기, 서서처럼. 서서는 만들어질 때부터 자신이 버그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당신은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군요. , 그런 점도 주군답긴 하네요.”

버그? 버그라니. 사마의 같은 걸 말하는 거야? 무슨 말이야, 제갈량.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제갈량은 유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인간계에선 남몰래 혼자 짓곤 하던 그 표정이었다. 유비는 제갈량의 불안정한 눈빛에 당황하고 있었다.

제갈량은 언제나 여유롭고 단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적어도 유비가 겪어온 제갈량은 그래야만 했다. 다른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길을 잃었을 때에도 단단히 중심을 지키며 다시 옳은 자리를 찾아준 사람이었다. 지금처럼 금방이라도 어긋날 듯, 절벽에서 떨어져버릴 듯 위태로운 모습은 낯설기 그지없었다.

제가 버그를 만들었습니다. 결국 스스로의 감정조차 다스리지 못하고, 실수를 저질러버렸단 말입니다. 옥쇄의 관리자라는 제 지위와 능력을 사사로이 이용해서.”

서서는 제갈량을 달래듯 천천히 어깨를 토닥였다. 무릎위에 올려둔 제갈량의 손이 주먹을 쥔 채 가늘게 떨렸다.

신선이 되어서, 그까짓 그리움이 뭐라고. 그걸 못 참고 서서를 만들어냈다고요. 서서를 발견한 순간, 난 그녀를 없애야만 했습니다. 서서는 버그니까. 존재해선 안 되는, 그런 것이니까.. 하지만 난.. 내게 약속을 지키러.. 인간계 이야기를 해주러 찾아왔다는 서서를, 차마.. 그리고 이젠 당신까지 만들어냈어요. 한심하지 않습니까?”

.. 괜찮아, 제갈량.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잖아? 지금부터라도 고치고 더 열심히 하면 되지. ?”

괜찮다고요? 뭐가 괜찮다는 말입니까?”

제갈량의 얼굴에 옅은 분노가 어렸다. 제갈량은 스스로의 감정이나 생각을 애써 숨겨가며 예의를 지키는 성품은 아니었으나, 이토록 급격한 감정변화를 분명하게 겉으로 드러내지도 않았다. 유비는 제갈량의 손을 붙잡을까 했으나, 지금의 제갈량은 조금만 건드려도 그대로 흩어져버릴 것만 같았다. 어쩌면 유비에게서 도망칠지도 몰랐다. 그는 그만큼 불안정해 보였다.

이 꼴을 봐요. 망가져버린 선계를 보시라고요. 난 지금 이 상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당장 옥쇄로 돌아가, 망가진 선계를 되돌리고 인간계를 살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난 지금 서서를, 나를 잠식한 이 버그를 밀어낼 수 없단 말입니다. 나는 더 이상 내 감정을 외면할 수도, 참을 수도 없게 되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뭐가 괜찮다는 건가요?”

제갈량..”

이젠 서서뿐만 아니라, 당신까지.. 주군까지 내 손으로 지워내야 합니다. 당신을 내 손으로 소멸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뭐가 괜찮다는 겁니까?”

제갈량은 유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유비는 천천히 손을 뻗어 제갈량의 손을 맞잡았다. 제갈량의 손이 유비의 손을 휘감듯 부여잡았다. 눈가가 젖어들었다. 속눈썹이 떨렸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밀어낼 듯 했다.

당신을 어떻게 내 손으로 해칩니까. 차라리 나타나지 말지 그랬어요. 나는 당신이 생성된 것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차라리 내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리지 그랬어요, 주군..”

나는 내 욕망을 견딜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건 모두 버그 탓이겠죠. 신선으로서의 의무를 져버릴 수 있게 된 것도, 그리고 다시 그 짐을 짊어질 엄두가 나지 않는 것도 보두 버그 탓이겠죠.

유비는 힘없이 중얼거리는 제갈량의 손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제갈량은 젖은 눈을 들어 유비를 바라보았다. 유비는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제갈량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인지 알았어. 대충은. 그래도 괜찮아, 제갈량. 난 버그가 아니니까. 난 가짜가 아니고, 네 실수도 아니야. 그러니까 넌 날 해치지 않아도 돼.”

“..무슨 뜻입니까?”

난 진짜 유비야. 네가 버그로 만들어낸 유비가 아니고, 너랑 같이 드림배틀에서 싸웠던 진짜 유비란 말이야. 네가 걱정돼서 잘 있나 보러온 것뿐이야. 그러니까 일단 진정해봐, ?”

제갈량은 유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멍하니 유비를 바라볼 뿐이었다. 유비는 제갈량의 손을 잡아당겼다. 제갈량의 몸이 힘없이 무너졌다. 유비는 제갈량의 몸을 끌어안았다. 제갈량의 손이 천천히 올라와 유비의 등을 감쌌다.

미안해. 조금만 더 빨리 와볼걸.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언제까지나 마냥 행복하기만 할 수는 없는 건데.. 네가 힘들어할 거라는 생각은 못해봤어. 미안해, 제갈량.”

주군.. 이십니까?”

. 나야, 제갈량.”

결국 눈물은 흘러내렸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잘 됐구나, 제갈량! 명랑한 서서의 목소리가 귓가로 스며들었다. 유비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에게만 들리는 목소리일 것이다.

서서의 모습을 한 버그는, 제갈량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경쾌한 걸음걸이로 그에게서 멀어졌다. 아마 사라질 것이다. 옥쇄의 관리자인 자신이, 버그를 수정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제갈량이 버그를 방치한 것은 고작 며칠뿐이었지만, 그 버그로 인해 처참하게 망가져버린 선계 역시도 곧 원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을 것이다. 이 역시도 자신이, 복구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주군..”

이곳까지 어찌 오셨습니까.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제가 주군께 걱정을 끼쳐드렸나요. 혹시 인간계에 무슨 변고라도 생겼습니까. 제갈량은 많은 말들을 삼키며 유비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눈물이 흘러 유비의 옷깃을 적셨다.


아아, 주군. 당신은 나의 소원까지도..

AND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레히삼)/ 유비제갈&제갈유비]

네가 나온 꿈

-논컾

-스포주의


도원관의 하루는 늘 바쁘고 소란스러웠다. 무술을 배우고자 찾아온 이들, 어린 아이들, 친구들과 함께 바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마음이 얼마나 즐겁고 기꺼웠던 간에 몸은 피곤에 찌들어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유비는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기분 좋은 수마가 몸을 타고 올라왔다. 유비는 감기려는 눈을 애써 깜빡이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한 밤이었다. 노식과 공손찬, 관우와 장비, 조운, 황개, 마초. 도원관 지붕 아래에는 유비의 평생을 통틀어 가장 많은 가족들이 함께 자고 있을 테지만, 유비는 슬그머니 고개를 쳐드는 허전함을 느꼈다. 이곳에 없는 또 다른 한 명 때문이었다.


제갈량. 있지, 오늘은..”


찬이가 과제 때문에 짜증을 엄청 냈어. 조별과제가 있는데 선배 하나가 무임.. 뭐를 하려고 한대. 조운이랑 장비가 자꾸 편식을 해서 큰일이야. 영웅패일때는 몰라도, 인간이 됐으니 소세지 말고 다른 반찬들도 골고루 먹어야 하는데. , 그리고 사부님이..

유비는 잠이 잔뜩 끼인 목소리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 날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전부 되짚기 전까지, 유비는 결코 잠들지 않았다. 가끔은 중간에 까무룩 잠들어버릴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러했다. 그리고 그 일상적인 고해의 맺음말은 언제나 똑같았다.


너도 잘 자, 제갈량.”


유비는 허공을 향해 방긋 웃어 보이고, 그대로 곯아떨어져버렸다.


**

 

유비는 눈을 깜빡였다. 익숙한 도원관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유비는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창문으로 스며든 햇빛이 바닥에 하얀 무늬를 그렸다. 먼지와 나무냄새가 뒤섞인 부드러운 향기가 났다. 유비에게 가장 소중한 장소였으며, 동시에 그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었다.


우와. 꿈인데 엄청 진짜 같다.”

당연하죠. 누가 만든 꿈인데요.”


익숙한 목소리에, 유비는 퍼득 고개를 들었다. 천천히 몸을 돌리는 동안, 심장이 터질 것처럼 거세게 뛰었다. 차분하고 단정한 머리 사이, 한 줌의 초록빛 머리칼. 눈매를 따라 얇고 날카롭게 그려낸 선 역시 초록색. 나른한 동작으로 부치는 부채 역시 초록.

무심한 듯 담담한 눈빛이 유비를 향하고 있었다. 유비는 잠시 멍하니 상대를 바라보다가,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띠며 상대를 불렀다.


제갈량!”


유비는 제갈량에게 달려가, 그의 몸을 와락 끌어안아 버렸다. 제갈량은 익숙하게 그의 체중을 받아내며 유비의 등을 토닥였다.


완전 오랜만이다! 어떻게 지냈어? 선계에서 계속 살고 있는 거야? 옥쇄는 잘 관리하고 있지? 선계에 먹을 건 많아? 소시지 같은 것도 있고 그래? 내가 만들어줄까?”

“..한 번에 하나만 물어보세요.”


제갈량은 유비의 팔을 슬쩍 밀어냈고, 유비는 순순히 물러나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언제나처럼 순순히 그의 말을 긍정해오는 유비를 보며 제갈량은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전 잘 지냈습니다. 당연히 선계에서 지내고 있고, 옥쇄를 관리하는 일쯤이야 어려울 건 없습니다. 선계에도 과일 같은 것들은 있지만, 신선들은 딱히 먹지 않아도 허기를 느끼지 않습니다. 소시지 같은 것은 당연히 없고요. 그리고 이곳은 어차피 주군의 의식 속.. 말하자면 주군의 꿈속이니 음식을 먹는 것에 별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방금 저한테 뭐 물어보셨는지도 까먹으셨죠?”

“....”


제갈량은 뒷짐을 진 채 혀를 찼으나, 유비를 크게 타박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유비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유비는 자신을 바라보는 제갈량의 눈빛에 웃음기가 스민 것을 보았고, 그를 향해 베시시 웃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제갈량 꿈을 꾸고 있는 거야?”

아뇨. 제가 주군의 의식 속으로 들어온 겁니다. 주군이 잠든 틈을 타서요.”

. 그래도 돼? 신선은 인간의 의식 속에서는..”

소멸한다고요? 괜찮습니다. 내가, 이정도도 못할 것 같아요?”


제갈량은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고개를 살짝 쳐들었다. 아냐, 제갈량이잖아. 당연히 할 수 있지. 할 수 있고말고. 유비의 대답에 제갈량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슬쩍 올라간 입꼬리를 본 유비는 다시 활짝 웃어 보이며 제갈량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아? 옥쇄 관리자가 막 이렇게 자리 비우고 그래도 돼?”

괜찮아요. 난 그 누구보다 유능한 관리자니까요. 이 정도 여유는 부릴 수 있습니다.”

우와, 넌 역시 대단해.”


제갈량은 평소에 자주 앉아있던 의자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유비는 그런 제갈량의 앞에 앉아 턱을 괸 채, 제갈량을 바라보았다. 유비는 필요 없다고 극구 사양하는 제갈량의 앞에 소시지 한 접시와 커피 한 잔을 내려놓고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제갈량은 별수 없다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순순히 포크를 집어 들었다.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놀러온 건 아닙니다.”

그럼 왜 왔어?”

주군에게 할 말이 있어서요. 부탁도 있고.”

? 부탁이라니.. 무슨 부탁? 말만 해. 제갈량 부탁인데, 뭐든 들어줘야지!”


제갈량은 포크를 내려놓고 커피잔을 집어 들었다. 접시에 담긴 소시지는 벌써 반으로 줄어있었다. 커피를 한 모금 머금은 제갈량은 슬쩍 시선을 올려 유비를 바라보았다. 유비는 여전히 빛나는 눈으로 제갈량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매일 저 신경써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

“힘들 때, 혹시 주군을 지켜보고 있는 제가 걱정할까봐 일부러 힘들지 않은 척. 그런 것 그만 하시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밤마다 하시는 것도요. 저 때문에 졸린 것도 참으시면서 몇 시간이고 혼자 떠들고 계실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매일 늦게 잠드니 매일 늦게 일어나게 되잖아요. 어제도 결국 공손찬 아가씨께 혼나시고..”

. 어떻게 알았어? . 설마, 선계에서도 나 지켜보고 있는 거야? 혹시 내가 위험해질까봐? 우와, 완전 감동이야, 제갈량!”

“...”


제갈량은 유비의 호들갑에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을 해도 저 좋을 대로 알아듣는 것은 유비가 가장 잘하는 일 중 하나였다. 제갈량은 그런 유비를 애써 정정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도 않았고, 굳이 그를 달래거나 막을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드림배틀이 끝나고 얼마간의 시간은 지났으나, 그것은 제갈량이 앞으로 살아가야할 시간에 비하면 찰나라고 해도 좋았다. 제갈량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기나긴 영겁의 시간을 버텨낼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곁에 있던 사람이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멀리서나마, 늘 그를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제 말은, 그렇게 절 신경써주시지 않으셔도 된다는 겁니다. 전 충분히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옥쇄를 관리하는 일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즐겁고, 인간계를 늘 바라보고 있으니 지루할 틈도 없죠.”

그래두.. 걱정이 되는 걸 어떡해. 그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

그래도 그렇게 하나하나 절 신경 쓰면서 무리하는 모습을 보면, 그건 걱정을 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차라리 힘들다고 칭얼거리는 쪽이 덜 걱정됩니다.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주군이라면 반드시 이겨낼 수 있을 테니까.”


유비의 입술이 뾰족하게 튀어나왔다. 그의 뚱한 표정을 바라보던 제갈량은 피식 웃으며, 테이블 위를 손사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못 알아들으셨나요? 지금 주군을 걱정했다고 말하고 있잖아요.”

.. ? , 내 걱정?”

. 주군 걱정. 배틀도 다 끝났는데 아직도 신선을 걱정시키다니, 정말 대단한 주군이시라니까.”


제갈량의 말에 유비는 쑥스러운 듯 뒤통수를 긁었다. 제갈량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조롱이나 비하의 뜻을 품지 않은 순수한 호의의 웃음. 서서가 없는 지금은, 오직 유비만이 볼 수 있는 표정이었다.


앞으로도 절 계속 걱정시키실 생각입니까?”

? 아니, 그건 절대 싫어! 제갈량은 옥새 관리만으로도 바쁠 텐데.. 알았어. 앞으론 절대로 무리 안 할게. , 약속.”


유비는 새끼손가락을 펴 제갈량에게 내밀었다. 굳은살이 베긴 무술가의 손가락과, 곧고 고운 신선의 손가락이 얽혔다. 어린애들도 안 할 손가락 약속을. 제갈량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유비가 손가락을 풀 때까지 얌전히 그와 손가락을 걸고 있었다.


그동안 많이 귀찮았겠다.. 미안해, 제갈량. 좀 더 일찍 말해주러 오지. 그럼 바로 그만뒀을 텐데.”

됐습니다. 사과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래두..”

저도 주군의 가족이라면서요. 그리고 가족끼린 일일이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면서요. 아니면 제가 도원관에서 나갔다고, 이제 저는 주군의 가족도 아니라는 뜻인가요?”

? , 아냐! 그런 거 절대 아냐! 알았어, 사과도 안 할게. 제갈량의 말대로 우린 가족이니까.”


굳은 표정으로 각오를 다지는 유비를 보며, 제갈량은 문득 손을 뻗어 뺨을 잡아당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실제로 행동에 옮기진 않았다. 그는 자신이 선택하고 인정한 주군이었고, 그런 그에게 나름대로의 예의를 갖추는 것은 자신의 본분 중 하나였으니까.

제갈량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커피잔 안에 반쯤 남은 커피는 이미 식어있었다. 제갈량을 올려다본 유비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 벌써? 조금만 더 있다가 가지..”

할 일이 많아서요. 주군도 곧 꿈에서 깨실 것 같고요.”


유비는 금세 시무룩해져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으로 감정기복이 크고 선명한 사람이다. 제갈량은 느릿한 몸짓으로 뒷짐을 지었다.


제 말 명심하세요. 또 걱정시키면 다시 잔소리 하러 찾아올 겁니다.”

그럼 제갈량 말 잘 들으면?”

“..제 말을 잘 들으시면..”


제갈량은 천천히 눈을 감으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 체 했다. 유비는 두 손으로 주먹까지 꼬옥 쥔 채 제갈량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갈량은 고개를 살짝 쳐들며, 짐짓 건방진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럼 칭찬해드리러 찾아오지요.”

“..제갈량..!”


제갈량의 대답에, 유비는 활짝 웃으며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제갈량은 이젠 익숙하게,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유비의 체중을 받아냈다. 제갈량의 손이 느리게 유비의 등을 토닥였다.


이젠 정말로 가봐야 합니다. 주군, 부디 건강하고 무탈하게 지내시길.”

. 잘 가. 또 와야 해? 그땐 정말 맛있는 것 많이 만들어줄 테니까. 약속이야. 알았지?”

“... 약속입니다.”


제갈량의 몸이 빛으로 흩어졌다. 유비는 하늘로 춤추듯 올라가는 빛무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잘 가, 제갈량. , 너 걱정시키지 않도록 힘낼게. 유비는 제갈량이 들었다면, 그러니까 그걸 그만두라는 겁니다, 하고 혀를 차며 짜증을 냈을 말을 입안으로 삼켰다.

 

**


창문을 통해 아침햇살이 스며들었다. 창틀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도 깨지 않을 만큼 곤히 잠든 유비의 입가엔 옅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AND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119)
미애만 (10)
일애만 (2)
스타트렉 (15)
룬의아이들 (0)
드라마 (25)
육룡이 나르샤 (14)
레전드 히어로 삼국전 (3)
크로스오버 (7)
기타 (1)
웹툰 (37)
게임 (1)
(14)
기타 (11)
1차창작 (1)
자캐커뮤 (1)
로오히 (1)

RECENT ARTICLE

RECENT COMMENT

CALENDAR

«   2025/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