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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3.07
포도주 항구엔 늘 포도 향기가 감돌았다. 동부 라노시아의 코스타 델 솔과 멀지 않은 위치인 덕인지 모험가들도 꾸준히 걸음하는 곳이었다.
모험가들은 에오르제아의 주민들이 하지 못할 위험한 일들을 곧잘 해내는 존재였다. 위험한 곳을 탐사하거나, 구하기 힘든 재료들을 구해오는 일들. 모험가들은 저들끼리 짝을 지어 그런 일들을 완수하고 보수를 받아가곤 했다.
그러나 모험가들도 사람이었고, 사람이 모이는 일에는 반드시 위계가 생긴다. 모험가들은 자유로웠지만, 그들 모두가 반드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 중에는 타인의 부탁을 쉽사리 거절하지 못하는 성품의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했고, 그런 이들은 다른 이들의 손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도 제대로 반항 한 번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들 역시 그렇게 일거리를 찾아온 모험가들이었다. 딱히 소란을 피울 생각도 없었고, 분란을 일으킬 생각도 없었다. 그들의 우두머리가 어디선가 날아온 책의 모서리에 뒤통수를 얻어맞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아, 씹.. 뭐야?"
"그러는 당신네들은 뭔데?"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돌아보았을 때, 그곳에는 바닥에 떨어진 큰뿔염소의 가죽 장정의 비술서를 집어드는 검은 머리칼의 미코테가 있었다.
"아, 또 망가졌어."
"이 년은 뭐야? 네가 던졌냐?"
"그런데?"
네 사람의 시선이 한 명의 미코테에게 쏟아졌다. 휴런이 둘, 루가딘이 하나, 라라펠이 하나. 검은 머리의 미코테는 얼굴을 찡그렸다. 푸른 눈이 가늘어졌다.
"왜 그렇게 쳐다봐? 한 대 더 때려줘?"
"뭐야?"
금발의 휴런은 검은 머리의 미코테를 쏘아보았다. 달의 수호자 특유의 동공이 선명한 푸른 눈이 그의 시선을 똑바로 받아냈다. 고작 미코테 주제에. 절로 속이 뒤틀렸다.
"야, 그냥 가자. 미친년인가보지. 뭘 미코테따위한테 열을 내고 있어."
"나 참.. 그래, 가자. 일진이 사나우려니까."
그는 땅에 침을 뱉곤 몸을 돌렸다. 나머지 일행들도 그를 따라 분분히 몸을 돌렸다. 미코테, 키몬타는 다른 일행들에게까지 일일히 신경을 쓰진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두 휴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금발 휴런의 뒷통수를 사납게 노려보던 키몬타는, 이내 그녀를 흘끔 돌아보다가 머뭇거리며 몸을 돌리는 또다른 휴런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나서야, 왜 그녀가 금발의 휴런에게 책을 집어던졌는지를 기억해냈다. 조금 전에 그렇게 화를 내놓고선, 그 이유는 그대로 깜빡 잊어버렸던 것이다.
"저기, 당신네들 어디 가는지는 상관 없는데. 맨 뒤에 걔는 놓고가."
"뭐?"
키몬타는 손을 들어 머뭇거리던 예의 휴런을 가리켰다. 면전에서 대놓고 삿대질을 하면서도 조금의 민망함이나 머뭇거림도 없이 당당한 표정이었다. 오히려 그 손끝에 놓인 휴런이 당황하여 눈동자를 데록 굴렸다.
"쟤는 놓고 가라고."
"이년이 진짜 보자보자하니까. 너 뭔데? 뭔데 우리 파티에 이래라저래라야?"
"가기 싫다잖아!"
다시 한 번 카랑카랑한 외침이 터졌다. 각자 제 할일에 집중하고있던 이들이 흘끗 돌아볼 만큼 사나운 외침이었다. 그러나 키몬타는 그들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았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있는 예의 그 휴런도 신경쓰지 않았다. 분노로 일그러진 상대의 표정에도 주눅들지 않았다. 그런 것들을 일일이 신경쓰기엔 자신의 기분이 너무 나빴다.
"자긴 가기 싫다고 얼굴에 써붙여놨잖아, 당신들이 뭔데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 배분은 제대로 해주기나 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뭐라는거야. 우리가 저놈 뜯어먹기라도 하고있다는 소리야? 야, 아서, 네가 말해봐. 우리가 너 싫다는거 억지로 끌고다니는 거야?"
갑작스레 자신에게로 돌아온 화살에, 아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키몬타는 금발의 휴런을 노려보더니 그를 향해 척척 다가갔다. 이내 번쩍 들어올린 그녀의 비술서가 다시 한 번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애한테 윽박 지르지 마, 멍청아!"
"악.. 뭐 이런 미친년이 다 있어!"
키몬타의 멱살을 잡으려 드잡이질을 하는 그를 곁에 서있던 루가딘이 뜯어말렸다. 키몬타는 저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건장한 남자 휴런의 몸부림에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또다시 그의 머리를 후려치려는 듯, 비술서를 든 손을 들어올렸다.
"아, 저기..!"
덥썩, 손이 잡힌 것은 그 다음이었다. 키몬타는 제 손을, 정확히는 제 손에 들린 비술서를 붙잡은 상대를 흘끗 돌아보았다. 분명히 조금 전 들었음에도 키몬타의 머릿속에선 이미 이름이 지워진 상대였다. 염색한듯 보이는 검고 붉은 머리카락과 파란 눈을 가진 휴런이었다. 한쪽 눈썹을 치켜드는 그녀에게, 아서는 고개를 내저었다.
"전 괜찮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싸우지 않으셔도.."
"뭐래, 바보가. 그래, 쟤 말고 너도 문제다. 가기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하지, 왜 질질 끌려다니고만 있어? 벙어리도 아니고."
키몬타는 아서의 손을 쳐내고 손목을 덥썩 붙잡았다. 그리고 그의 손목을 확 잡아끌어 제 뒤로 밀쳐냈다. 금발의 휴런을 쏘아보는 눈빛이 제법 살기등등했다.
"순해 빠진 애 등골 빼먹는 꼴은 못보겠으니까 얜 놓고 당신네들끼리 가."
"뭐야?"
"야, 가자. 근위병들 오기 전에 가자고. 탱커는 또 구하면 되잖아, 가자."
라라펠의 만류에 씩씩거리던 금발의 휴런은 바닥에 침을 탁 뱉고 자리를 떴다. 나머지 두 사람도 아서에게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어설프게 고갯짓을 해보이곤 그를 따라 가버렸다. 포도주 항구에 두 사람만 남았다. 키몬타는 짜증이 가득한 눈으로 아서를 휙 돌아보았다. 아서는 멋쩍은 표정으로 키몬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너 진짜 바보야? 가기 싫으면 가지 마. 그렇게 죽상을 하고 왜 질질 끌려다녀?"
"아뇨, 전 진짜 괜찮았는데.. 힘든 일도 아니고요, 딱히 거절할만한 일도 아니었고.."
"아우, 답답해. 그렇게 맹하게 다니면 호구 취급밖에 더 받니? 너 좋자고 하는 모험이잖아. 네가 가고싶은데 가고, 필요한데를 가. 야영지 가려고 여기까지 온거지? 아까 그 라라펠 힐러 장비때문에?"
키몬타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비술서를 허리에 매달았다. 그리곤 팔짱을 끼고 상대의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어디 갈거야."
"네?"
"어디 갈거냐고. 네가 가야하는데 말해봐. 방금 가려던데 말고."
머뭇거리며 대답을 망설이는 아서를 보며 키몬타는 미간을 좀 더 좁혔다.
"넌 탱커, 난 학자로 힐러. 그러면 딜러 둘만 더 구하면 되잖아. 딜러는 금방 구하니까 같이 가준다고."
"감사하지만 갑자기 왜.."
"너 답답해서 그래, 답답해서! 도와준다고 하면 그냥 고맙습니다, 하고 넙죽 받아먹으면 되는거야, 바보야!"
신경질적인 사람이구나. 아마 그정도가 키몬타에 대한 아서의 첫인상이었을 것이다. 아서가 고민과 망설임을 끝마칠 때까지, 시종일관 종알거리며 짜증을 냈던 미코테였으니까.
***
오타수정은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