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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라이/판타지au] [Homunculus] - 03


잘 참았어, 아이작.”


라이퀴아는 아이작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주었다. 어린 소년의 얼굴은 눈물과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그러나 소년은 볼멘 소리를 하지도, 투정을 부리지도 않았다. 그저 라이퀴아의 눈치를 보며, 연약한 웃음을 지었을 뿐이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에 미소가 덧씌워지자, 이도저도 아닌 어색한 표정이 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많이 아파?”

“..괜찮아요, 선생님.”

매번 미안하다. 선생님이 빨리 방법을 찾아볼게.”


아이작은 라이퀴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퀴아는 아이작에게 작은 컵을 쥐어주었다. 컵 안에 담긴 물에선 향긋한 냄새가 났다. 진통과 진정에 효과가 있는 약초를 달인 물이었다.

아이작이 약차를 끝까지 마시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라이퀴아는 살점이 녹아나온 용액들을 한데로 모았다. 몇 가지 용액이 섞이며 역한 색과 냄새를 풍기는 액체가 커다란 양동이를 가득 채웠다. 라이퀴아는 유독 조심해 다뤄야하는 재료 몇 가지만을 남겨둔 채, 묵직한 양동이를 질질 끌고 방을 나갔다.

양동이에 담겼던 약품들을 모두 비우고 돌아왔을 때에도, 아이작은 여전히 자신의 의자에 앉아있었다. 아이작의 몸집에 비하면 조금 큰 감이 있는 의자였다. 라이퀴아는 아이작이 처음으로 눈을 떴던 날로부터 날짜를 세어보았다.

이맘때의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이작은 조금도 자라지 않았다. 라이퀴아는 마른 수건을 집어 들며 아이작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깡마른 다리는 수건으로 힘을 주어 문질러도 살점이 묻어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숱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면 다시 썩을 것이고, 아이는 고통에 몸부림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시 녹은 피부를 닦아내고 새 피부를 씌워주거나, 썩은 부위를 잘라내고 새로운 몸을 이어 붙여야 한다.

아이작의 몸은 한 달이 멀다하고 곳곳에 문제가 생겼다. 그러나 아이작은 완전히 썩어 문드러져 가릴 수 없게 될 때까지 자신의 상태를 숨기곤 했다. 그럴 때마다 라이퀴아는 아이작을 부드럽게 타일렀지만, 아이작의 태도는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제가 선생님을 귀찮게 만들면 선생님이 힘드실 것 같아서요.’

그렇게 말하는 아이작의 어깨는 축 처져있었다. 라이퀴아는 풀이 죽은 아이를 더 이상 나무라지 못하고, 다정하게 안아주었을 뿐이었다. 라이퀴아는 그날부터 더욱 꼼꼼하게 아이작을 보살피기 시작했다.


저기, 선생님.”


라이퀴아가 약물로 더러워진 수건을 정리하는 라이퀴아를 불렀다. 라이퀴아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아이작을 돌아보았다. 아이작은 말끔해진 새 다리를 아이답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라이퀴아는 그것이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아이작 나름대로의 노력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 아이작.”

가실..”


아이작의 목소리가 긴장으로 뒤집어졌다. 이상하게 터져나온 제 목소리에, 아이작은 깜짝 놀라며 제 입을 틀어막았다. 푸른 눈이 빠르게 깜빡였다. 라이퀴아는 더러운 수건을 멀찌감치 밀어놓고 아이작의 작은 몸을 안아 올렸다.

자신의 의자에 앉은 라이퀴아는 아이작을 무릎 위에 앉혔다. 등받이 하단에 뚫린 작은 틈으로 아이의 마른 다리가 삐져나갔다. 라이퀴아는 아이작의 등을 다정하게 쓸어주며 눈을 맞췄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그래. 겁먹지 말고 말해봐, 아이작.”

“..가실 거예요?”


아이작의 말에는 많은 것이 생략되어 있었기 때문에, 라이퀴아가 아이의 말을 이해하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아이작은 불안한 눈으로 라이퀴아를 올려다보며 그의 옷자락을 살짝 움켜쥐었다.


어딜 말이니?”

어제 오셨던, 그 스승님이라는 분..”


아이작의 말에 라이퀴아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


돌아오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라이퀴아와 비숍은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없었고,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라이퀴아는 아이작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 순간부터 말을 멈췄다. 그 말인즉, 두 사람의 대화가 아이작에게 들릴 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들렸니?”

“... 죄송해요. 몰래 들어서.. 그런데 그냥 들려서 그랬어요.”

어디서부터 들렸어?”

거기.. 책 많은 방이요.”

“..아하하.”


라이퀴아는 아이작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선생님? 자신을 부르는 라이퀴아의 목소리에는 당황스러움이 묻어났다. 라이퀴아는 나직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목이 메이는 것이 느껴졌다. 언제나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아이작이 또다시 자신을 걱정할 것 같아서, 라이퀴아는 억지로 숨을 삼키고 호흡과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니야, 아이작. 난 가지 않을 거야.”


죽은 사람의 시신을 이용해 호문클루스를 만드는 것은 글로리아에선 물론, 사회 어느 곳에서도 허락받지 못하는 금기였다. 인도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장애물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그러나 라이퀴아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슬레이의 시신은 마법으로 만든 얼음 속에 가둬놓았으나, 연구를 거듭하는 동안 많은 부분이 썩어버려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만들어진 호문클루스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호문클루스가 눈을 떴을 때, 라이퀴아는 소년의 푸른 눈동자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오래된 기억 속의 눈동자와 꼭 닮은 눈동자였다. 라이퀴아는 소년에게 아이작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기억속의 아이작과 눈앞의 아이작, 두 소년이 가진 공통점은 이름과 외모뿐이었다. 아이작은 라이퀴아를 기억하지 못했고, 라이퀴아가 기억하던 것과는 성격도 전혀 달랐다. 썩을 때마다 교체해온 몸에는, 이미 이슬레이 본인의 신체였던 부분이 남아있기는 할지 의심스러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라이퀴아의 불안감은 커져갔다. 자신이 들였던 노력이나 시간이 아까운 것은 아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해버렸다는 후회도 하지 않았다. 다만 오랫동안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고, 마지막엔 자신을 감싸며 죽은 이슬레이의 시체를 자신의 욕심으로 헛되이 낭비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에 가까웠다.

아이작에게 갑자기 나타난 비상한 청력은, 그런 라이퀴아에게 무엇보다 큰 희망이 되었다.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 이슬레이와 같은 존재라는, 가장 명확한 증거였다.


정말요?”


라이퀴아에게 되묻는 아이작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라이퀴아가 울음을 삼키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아이작은, 작은 손으로 천천히 라이퀴아의 등을 쓸어주었다. 라이퀴아는 그 조심스러운 손길에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슬레이는 유독 예민한 귀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벽 너머의 소리는 물론, 주변이 크게 소란스럽지 않다면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거리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비숍을 따라 글로리아로 들어오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재능이었다. 글로리아의 많은 성직자들이 불길하게 여기거나 기분나빠했지만, 비숍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래. 내가 널 두고 어딜 가겠어.”


아이작이 호르르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몸에서 긴장이 풀리며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라이퀴아는 웃으며 아이작을 안았던 팔을 풀었다. 아이작의 눈은 고였던 눈물로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언제부터 귀가 잘 들리게 되었니?”

..주일쯤 전이요.”

왜 말하지 않았어.”

그게..”


아이작은 어물어물 말꼬리를 흐렸다. 선생님을 귀찮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아이작의 대답은 언제나와 같았다. 넌 내게 아주 귀한 아이란다. 너에 관한 일이라면 하나도 귀찮은 것이 없어. 라이퀴아의 다정한 목소리에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라이퀴아는 아이작이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도 바깥의 소리가 들려?”

“...”

무슨 소리가 들리니?”


아이작은 어물거리며 라이퀴아의 눈치를 보았다. 라이퀴아는 아이작의 앞머리를 쓸어 넘기고, 반듯한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괜찮아, 아이작.”


아이작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새 소리가 들려요. 부엉이 같아요. 울음소리도 들리고, 날갯짓하는 소리도 들려요. 라이퀴아는 아이작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기대도록 고쳐 안고, 부드럽게 등을 쓸어주었다.

약차가 뒤늦게 효력을 발휘한 듯, 아이작의 목소리가 점차 느려졌다. 라이퀴아는 가물거리는 아이를 다독여 재우고, 아이의 헝클어진 고수머리에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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