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롤플레잉 겜만화

[이슬라이/판타지AU] 2017.03.26 롤겜만화 전력 5회 - 꽃

O.A 2017. 3. 26. 22:26

[이슬라이/판타지AU] 2017.03.26 롤겜만화 전력 5회 - 꽃


-겨울청년과 봄소년과 얼어붙은 호수와 동백나무 이야기


아주 먼 옛날에는 단 하나의 계절밖에 없었어요. 계속되는 가을에 나무에선 언제나 과일이 열렸고, 곡식들은 언제나 익어있었고, 동물들은 언제나 살이 올랐어요. 가을을 돌보는 것은 단 한 명의 남자였죠. 남자는 무척 뛰어나고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혼자서도 충분히 계절을 돌볼 수 있었어요.

하지만 남자는 어느 날 작은 아이를 제자로 들였어요. 작은 아이는 남자를 스승님으로 모시고 마음 속 깊이 사랑했어요. 그러나 작은 아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남자처럼 열매를 맺게 하고, 곡식을 익게 하고, 동물들을 살찌울 수 없었어요. 작은 아이가 만지는 꽃은 모두 시들었고, 만지는 나무는 모두 말라붙었고, 만지는 동물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버렸어요.

작은 아이는 청년이 되어서도 남자를 따라할 수 없었어요. 오히려 몸이 자라면서 힘이 더 강해졌고, 청년은 그것을 무척 싫어했어요. 청년이 만지는 것은 모두 얼어붙었고, 멈췄고, 차갑게 변해버렸어요. 하지만 남자는 그런 청년의 손을 잡아주고 다정하게 웃었어요.

 

-저는 이렇게 쓸모가 없어요, 스승님.

-그렇지 않단다. 너는 그들에게 오랫동안 휴식을 주고, 다시 자랄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어.

 

남자는 청년에게 겨울을 맡겼어요. 겨울청년은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겨울을 돌보기 시작했어요.

***

남자는 또 다른 작은 아이를 제자로 들였어요. 작은 아이는 남자를 스승님으로 모시고 마음 속 깊이 사랑했어요. 작은 아이는 새로운 생명을 움트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어요. 작은 아이의 발이 닿는 자리에는 꽃과 풀이 자라고, 마른 가지를 만지면 물이 올라 싱싱해졌고, 깊게 잠든 동물은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켰어요.

남자는 작은 아이가 소년이 될 때까지 그를 돌보며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주었어요. 땅이 얼어있는 이유, 나뭇가지가 말라버린 이유, 동물들이 깊게 잠든 이유. 그리고 소년보다 먼저 남자를 만났던 겨울청년에 대한 이야기까지도.

 

-그 사람은 저를 좋아할까요?

-이 세상에 너를 좋아하고 반기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란다.

 

남자는 소년에게 봄을 맡겼어요. 봄소년은 스승을 떠나, 겨울청년을 찾아 나섰어요.

***

봄소년이 겨울청년을 찾아낸 것은 얼어붙은 호수 위였어요. 청록색으로 두껍게 얼어붙은 호수 위, 겨울청년은 눈 덮인 산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있었어요. 주변이 온통 하얗게 얼어붙어있었기 때문에, 겨울청년의 검은 머리카락은 더욱 두드러졌어요.

봄소년은 그 눈 덮인 땅에 발을 디뎠어요. 온통 고요하던 겨울의 세상에 눈이 녹고, 언 땅에서 새싹이 자라나는 소리가 들렸어요. 어디선가 날아온 새의 노랫소리를 들은 겨울청년은 뒤를 돌아보았고, 봄소년을 발견했어요.


봄소년은 겨울청년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청록색으로 얼어붙은 호수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 겨울청년이 밟고 서있는, 그 호수의 빛깔을 꼭 빼어 닮았기 때문에요.

겨울청년은 봄소년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겨울청년은 겨울이 끝나고 얼음이 녹은 뒤의, 깊은 호수의 색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요.

 

그날부터 봄소년은 매일 그 호수를 찾아갔어요. 하지만 겨울청년은 얼어붙은 호수 한 가운데에서 벗어나지 않았어요. 언제나 눈이 덮여있던 호수의 주변에는 눈이 녹았고, 꽃이 피었고, 작은 동물들이 뛰어다니고 새가 내려앉았어요. 하지만 호수는 늘 얼어붙어있었고, 겨울청년은 늘 얼어붙은 청록색 호수 위에서 봄소년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어요. 봄소년은 점차 외로워졌어요.

 

어느 날, 봄소년은 호숫가에 앉아서 울음을 터트려버렸어요. 하지만 겨울청년은 봄소년에게 다가가지도, 눈물을 닦아주지도, 달래주지도 않았어요. 여전히 호수 한 가운데에 서서, 봄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어요. 한참동안 주저앉아 울던 봄소년은 결국 혼자서 호숫가를 떠났어요.

 

겨울청년은 봄소년이 완전히 떠나간 뒤에야 봄소년이 앉아있던 자리로 다가갔어요. 겨울청년이 호숫가에 가까워질수록 호숫가에 피어난 꽃들은 시들었고, 새들은 날아갔고, 작은 동물들은 잠이 들어버렸어요.

겨울청년은 봄소년이 남기고간 씨앗을 발견했어요. 봄소년의 눈물이 굳어져 만들어진 씨앗은 그 주인을 닮아서 작지만 많은 생명력을 품고 있었어요. 겨울청년은 직접 얼어붙은 땅을 파고 씨앗을 심었어요.

 

시간이 지나자 봄소년은 겨울청년이 그리워졌어요. 한참을 망설이던 봄소년은 결국 다시 겨울청년의 호수를 찾았어요. 그리고 자신의 눈물에서 자라난 동백나무를 보았어요. 동백나무는 다시 겨울이 찾아온 땅에서도 꿋꿋하게 자라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동백나무 아래에는 겨울청년이 잠들어 있었어요.

봄소년은 겨울청년에게 다가갔어요. 겨울청년은 눈을 뜨고 봄소년을 올려다보았어요. 봄소년은 겨울청년의 곁에 앉았고, 둘은 나란히 나무에 기대앉아 오랫동안 나누지 못했던 긴 이야기들을 나누었어요. 겨울청년은 봄소년이 피워낸 여린 봄꽃들이 자신 때문에 시드는 것을 안타까워했어요. 봄소년은 그런 걱정으로 고립된 겨울청년을 안타까워했어요. 봄소년은 주저하는 겨울청년을 따듯하게 안아줬어요.

하루해가 저물도록 겨울청년과 봄소년은 긴긴 대화를 나누었어요. 그리고 겨울청년이 떠나야할 시간이 다가왔을 때, 봄소년은 겨울청년과 약속을 했어요. 자신이 이 동백나무를 크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돌보겠다는 약속이었어요. 겨울청년이 기대어 쉬더라도 절대로 시들지 않을 만큼 크고 튼튼한 나무로 말이에요.

 

이 두 그루의 동백나무는 그렇게 자라나게 되었답니다. 지금도 겨울청년이 이 호수를 떠나는 날이면, 겨울청년과 봄소년은 하루 종일 나무 아래에서 길고 긴 대화를 나누고, 사랑을 담아 이마에 입을 맞추고, 약속을 하고, 작별인사를 한다고 해요.

아하하, 별로 취향에 맞는 이야기가 아니셨나요? 죄송해요. 하지만 겨울청년과 봄소년의 길고 긴 이야기를 모두 풀어내려면 며칠이고 밤을 새야만 하는걸요.

봄소년이 돌아간 뒤 혼자 남은 겨울청년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겨울청년이 흘렸던 눈물이 어떤 재앙을 불러올 뻔 했는지, 그 눈물을 닦아준 봄소년이 겨울청년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그 길고 긴 이야기들을 어떻게 이 자리에서 다 풀어놓을 수 있겠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