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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숍이작] 3월 11일 머리깨기팟 술게임 연성빵 // 주제 :우상

O.A 2017. 3. 12. 13:24

[비숍이작] 3월 11일 머리깨기팟 술게임 연성빵 // 주제 :우상


내가 죽지만 않았더라면.’

언젠가 한 적 있던 생각이 또다시 뇌리를 스쳤다. 내가 죽어있는 동안 내 몫까지 딜을 하며 낭비한 마나. 리저렉션에 들어간 마나. 클리어 시간이 길어지며 낭비한 탱커의 스테미나. 그것들이 모두 온전히 남아있었다고 해도 승산이 있었을지 장담은 할 수 없었지만, 조금 더 발악은 해볼 수 있었으리라.

너 역시 그때 그 놈 맞지?”

까치는 쥐고 있던 창을 바닥으로 늘어트렸다. 이슬레이는 빠르게 시선을 돌려 에피타이저와 라이퀴아를. 타이난을 훑어보았다. 팔 관통, 다리 절단, 기절 디버프, 탈진. 누구 하나를 꼽을 것 없이 모두가 엉망진창이었다.

여전하구나. 하나도 발전한 게 없어. 그때랑 똑같이 한심해.”

까치는 천천히 손을 올렸다. 투창스킬의 기본자세. 이슬레이는 힘도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때도 그랬지. 전설이 될 수도 있었던 사람의 발목을 잡고, 뭘 잘했다고 그렇게 징징거리고. 너만 아니었으면 그 사람은..”

쐐애액. 공기를 가르며 날아드는 창이 내는 바람소리에 눈을 질끈 감았을 때. 그 날카로운 소리에 섞여 들려온 가벼운 발소리. 무언가를 쳐내는 소리. 비행마법 직후에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의 소리. 그 밖의 낯설거나 낯익은 소리들이 뒤섞여 귓가에 메아리쳤다.


아이작.”

그리고 들려온 목소리는, 매일같이 잊지 않으려 몇 번이다 되새기던 기억 속의 목소리와 다를 바가 없어서. 이슬레이는 퍼득 눈을 뜨며 고개를 들었다.

옷 위로 싸맨 붉은 망토는 낯설었으나, 분명이 눈에 익은 뒷모습이었다. 글로리아 성직자의 옷. 익숙한 등. 평온하게 들려오는 그 사람의 목소리.

따라오다가 중간에 놓쳐서. 미안해, 좀 늦었지.”

숨이 턱 막히고,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졌다. 울 만큼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눈물이 고이고, 이내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

벌써 몇 년이 지났건만, 기억 속의 모습 그대로 나타난 당신을 보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 당신에게 또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더 한심한 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하고, 당신이 나타난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누구도 당신을 이길 수 없을 거라는 강한 믿음에 마음이 놓여서.

조금만 기다려, 아이작.”

스태프를 꺼내드는 당신의 모습이. 스킬을 쓸 준비를 하는 당신의 모습이. 언제나 한심 천만하던 나를 지켜주는 당신이, 기억 속의 당신과 너무 똑같아서.

금방 이기고, 힐 해줄 테니까.”


아아, 드디어 만났네요. 나의 우상이었던 당신을.

당신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