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애만/기타

[파이널판타지14 AU] 창천의 이슈가르드. 비갑의 용기사. #1~5

O.A 2016. 2. 4. 17:20

제이슨 위주로..

파판 설정을 잘 모르겠어서 내 마음대로 설정 날조함+소설 아니고 그냥 썰 정리

1. 이단자랑 이슈가르드인은 싸운다

2. 용기사라는 존재는 없음. 창술사는 있지만 인게임처럼 붕붕 날아다니는 용기사는 없다

3. 웨인 가문은 이슈가르드의 귀족. 브루스는 국민적인 전쟁 영웅. 가끔 재능 있는 고아들을 거둬서 기름.

 

***

#1

***

실내복만을 입고 밖으로 뛰쳐나온 딕은 목덜미를 쓸고 가는 차가운 바람에 온몸을 떨었다. 눈 덮인 이슈가르드는 언제나 추웠지만, 딕은 한가하게 코트를 찾아 챙길 시간이 없었다. 몇 명의 하인들이 저택의 입구에서 웅성거리는 것이 보였다. 딕을 쫓아 나온 데미안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으나, 딕은 그에게 주의를 주는 것도 잊었다.

하인들의 틈바구니를 비집으며 앞으로 나아간 딕은 비명에 가까운 부름을 내질렀다.

"브루스! !"

"아버지!"

데미안이 황급히 뛰쳐나가 브루스를 부축하려다가 멈칫했다. 브루스는 어디에 손을 대야할지 모를 정도로 온몸이 만신창이였다. 그는 팀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신음을 흘렸고, 그러면서도 품에 안고 있는 거대한 꾸러미는 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하인들의 손마저 뿌리치며 부들부들 떨리는 걸음을 간신히 옮기고 있었다.

"브루스, 괜찮아요? 데미안, 가서 환술사들을 불러 모아. 저택 안에 있는 환술사들이라면 전부 다."

"알았어."

데미안은 급한 걸음으로 저택으로 날듯이 뛰어 들어갔다. 딕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브루스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입술이 달싹였으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쇳소리 같은 쉬어버린 숨소리를 알아들은 딕은 브루스를 향해 다가갔다.

"일단 기대요, 브루스. 저택으로 가요. 빨리 가서 치료를.."

"...."

브루스는 딕에게 품에 안고 있던 꾸러미를 넘겨주었다. 피냄새가 섞인 지독한 악취가 훅 끼쳤다. 그러나 딕은 얼굴 한번 찡그리는 일 없이 그것을 넘겨받았다.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 아이를.."

브루스는 결국 정신을 잃었다. 갑자기 쏠려오는 무게에 그를 부축하던 팀이 휘청거렸다. 하인들이 브루스를 부축해 저택 안으로 옮기려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딕은 안고 있던 것의 천을 조금 걷어보았다.

그리고 그대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피로 얼룩진 꾸러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사람이었다. 그것도 그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처참한 몰골에, 기억속의 모습보다도 조금 더 자랐긴 했지만, 딕은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딕은 희미한 숨을 흘리는 그를 끌어안았다. 피로 옷자락이 눅눅하게 젖어드는 것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의 이름은 한숨 같은 속삭임으로 흘러나왔다.

"제이슨.."

 

***

#2

***

브루스가 실종된 지 일 년이 조금 안 된 날이었다. 죽은 줄 알았던 주인의, 혹은 영웅의 귀환에 저택의 하인이나 영지의 백성들은 환호하고 열광했다. 저 악독한 이단자들의 소굴로 홀로 뛰어들어 브루스를 구해온 티모시 웨인도 구설수에 올랐다. 작은 영웅이라고.

비록 중태였지만, 그의 쾌유는 너무나 당연한 일로 생각됐다. 최고의 환술사와 비술사들이 하루 종일 달라붙어 그를 돌봐 줄테니까. 그 기대에 부응하듯 브루스는 사흘도 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사실에 마음 놓고 환호하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바깥사람들의 일이었다. 저택의 가장 깊은 곳은, 브루스와 그의 아들들의 공간은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데미안은 브루스가 죽었을 거라 여겨졌던 지난 일 년 동안에도 본 적 없었던 딕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는 중이었다. 그는 여전히 브루스를 대신해 가문을 돌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우울해하고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언제까지 그런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을 생각이야, 그레이슨."

딕은 데미안의 목소리를 듣고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는 손끝에 묻은 잉크를 닦아내며 미소 지었다.

"브루스는?"

"그 시체랑 같이 있어."

"브루스 앞에선 농담으로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

"그럼 이름이라도 알려주던가."

딕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데미안은 알게 뭐냐는 듯 무심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딕은 알프레드에게 따듯한 차를 부탁했다. 알프레드가 은은한 향의 차를 내어올 때까지, 딕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데미안을 보며 웃어보였다. 최근 들어선 드물게 장난스러운 미소였다.

", 좋아. 그동안 궁금했을 텐데도 잘 참아줬으니 나도 슬슬 대답을 해줘야겠지."

"애 취급 하지 말라고 누누이 말했을 텐데."

"그럼 뭐부터 말을 해야 하나.. 일단 이름부터 알려줄게. 그 애의 이름은 제이슨이야. 내 의붓동생이고, 네 형이기도 해. 나를 이어서 두 번째로 웨인의 이름을 받을 아이였고. 지난 3년 동안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지."

제이슨 토드는 이슈가르드의 많은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고아였다. 웨인가문 마차의 바퀴를 훔치려다가 브루스에게 들켰고, 그의 재능을 알아본 브루스가 아이를 거뒀다. 아이는 딕과 마찬가지로, 성인이 되는 날 웨인의 성을 물려받기로 했다.

아이는 브루스를 따라 전장으로 나가는 일이 잦았다. 검은 망토를 두른 브루스와, 샛노란 망토를 두른 채 그의 옆을 지키는 어린 종자는 언제나 당당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이슨은 이단자들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처음엔 포로로 잡혔으리라 판단한 딕과 브루스는 제이슨을 구하기 위한 방법을 갈구했다. 그러나 다음날 그들에게 커다란 궤짝이 배달되었고, 그 안에는 포로로 잡혀 들어간 이들의 몸과 머리가 가득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놓인 것은 찢어발긴 노란 망토였다.

브루스는 이를 으득 갈며, 시신들의 신원을 파악해 가족들에게 부고를 알리라 전했다. 그리고 시신은 일괄적으로 화장을 명했다. 이런 처참한 몰골을 유가족에게 보일 수는 없다는 판단이었다.

마법사들에게 노란 망토에 스민 피가 제이슨 본인의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받은 브루스는, 더 이상 새로운 종자를 들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던 브루스가 어째서 팀을 받아들인 것인지는 딕도 알지 못했다.

여하튼 브루스도 딕도, 그렇게 제이슨은 가슴에 묻었다. 제이슨의 시신은 없었지만, 그것이 제이슨의 생사를 판가름하는 근거는 될 수 없었다. 돌려받은 시신은 온전한 것이 없었다. 용이 뜯어먹은 흔적이 선명했다. 용의 뱃속으로 들어간 시체가 몇 구나 될 것인지, 가늠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제이슨은 그들의 저택으로 돌아와 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이가 그들에게 돌아왔다. 3년만의 재회였지만, 제이슨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의식이 없었다. 끊어질 듯 가느다란 숨만 내쉴 뿐이었다. 그가 3년간 무슨 짓을 당했을지, 딕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브루스는 말을 아꼈다. 그는 지금 제이슨의 침대 맡을 지키고 있었다.

딕의 설명을 들은 데미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딕은 그런 데미안의 머리를 쓰다듬고 서재를 나섰다.

 

***

#3

***

"브루스."

달칵. 조용히 방문이 닫혔다. 딕은 의자에 미동도 없이 앉아있는 브루스를 향해 다가갔다. 아직 본인도 상처가 다 낫지 않았으면서, 그는 며칠째 제이슨의 곁을 지키고 서있었다.

딕은 브루스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 침대 위에 죽은 듯 누워있는 제이슨을 보았다. 신경을 안정시키고 숙면을 돕는 향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력을 품은 크리스탈이 머리맡에서 빛났고, 침대를 중심으로 바닥에 빼곡히 그려진 마법진은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제이슨은 죽은 듯 잠들어있었다. 딕은 조심스럽게 침대로 다가가, 손을 뻗어 그의 입술 위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습한 숨이 손가락에 감긴다. 너무나 희미한 숨이었다.

처참한 몰골에 가슴이 아팠다. 이단자라고 하더라도 그들 역시 인간일진데. 그들에게 잡혀갔던 소년은 고작 열다섯이었다. 어린아이에게 이런 끔찍한 짓을 할 수 있는 자들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딕은 용납할 수가 없었다.

제이슨은 왜소한 체격의 아이였다. 오랫동안 길거리를 떠돌고 추위에 떨던 몸은 작았고, 다리는 새처럼 얇았다. 열여덟의 제이슨 역시 미라처럼, 뼈만 남다시피 비쩍 마른 상태였다. 다만 골격만큼은 훌륭하게 자라서, 치료가 끝나고 조금만 재활을 거치면 건장한 성인 남성의 태가 날 것도 같았다.

딕은 붕대로 단단히 감아놓은 제이슨의 손을 보았다. 그러난 손가락 끝이 끔찍하게 뭉그러진 것이 보인다. 손톱이 나려면 꽤 시간이 지나야 할 것 같았다. 딕은 침대가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걸터앉았다.

"당신 탓이 아니에요, 브루스."

브루스는 딕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딕은 손을 뻗어 브루스의 무릎에 손을 올렸다. 두 남자의 시선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입술로 가 닿았다.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숨결이 눈에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

#4

***

창문을 닫자 펄럭이던 커튼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늘 피워두는 향은 넓은 방을 금세 채웠다. 하루에 두 번씩 환기를 시켜야 하지만, 찬바람이 방 안으로 드는 것은 늘 걱정스러웠다.

브루스는 눈으로 뒤덮인 창밖의 정원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그 자리에서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제이슨은 눈을 뜨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브루스는 소리 죽인 걸음으로 침대를 향해 다가갔다. 얼굴을 가린 붕대 사이로, 몇 년 만에 마주하는 푸른 눈동자가 보였다. 그 푸른색만은 기억속의 어린 눈동자와 다를 것이 없어서, 브루스는 울컥 치받는 기분을 느꼈다.

"제이슨."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도 제이슨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제이슨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조금 더 천천히 다시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에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는 것이 보였다. 브루스는 느릿하게 손을 뻗어, 제이슨의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브루스!"

딕은 방문을 열고 뛰쳐 들어오다가 멈칫했다. 침대에 깔린 이불이 피로 얼룩져있었다. 온통 난장판이 된 방안을 하인들이 부지런히 치우며 침대를 흘끗거렸다. 환술사들이 침대를 둘러싸고 주문을 외우는 것이 보였다. 딕은 의자에 앉아있는 브루스를 향해 다가갔다. 브루스의 셔츠에도 피가 스민 것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예요?"

"발작을 일으켰다."

브루스의 눈은 가라앉아 있었다. 자신의 손이 닿는 순간, 제이슨은 그 몸 상태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힘으로 몸을 솟구치며 비명같은 고함을 질렀다. 그는 브루스의 손을 뿌리치고, 날뛰며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고 부수기를 반복했다. 그를 말리려던 브루스가 결국 강제로 그의 몸을 제압해 찍어 눌렀을 때에도, 제이슨은 광인 같은 비명을 멈추지 않았다. 격렬한 저항으로 상처가 터지고 피가 흘렀다. 뒤늦게 달려온 환술사들의 수면마법이 들기 전까지, 제이슨은 짐승처럼 날뛰었다.

브루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어깨를 잡은 딕의 손 위에 제 손을 올리고, 침묵을 지켰을 뿐이었다. 딕은 자신의 손등 위로 느껴지는 브루스의 손과, 그 온기와, 맥박을 느꼈다.

"나중에 이야기하자."

한참을 기다린 뒤에 나온 말도, 고작 그것뿐이었다.

 

***

#5

***

딕은 방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책에 고정되어있던 시선이 느긋하게 올라갔다.

"제이슨."

제이슨은 조용히 문을 닫고, 문을 등진 채 우두커니 서있었다. 딕이 그를 향해 손을 뻗자, 그는 천천히 다가가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딕은 읽던 책을 덮어 테이블에 올려두고, 두 손으로 제이슨의 손을 끌어당겨 잡았다.

그 하나를 전담하는 환술사의 수에 비하면 무척 더뎠지만, 제이슨은 조금씩 상태가 호전되었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기만 하던 발작하며 난동을 부리는 일도, 의미 모를 괴성을 지르는 일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아팠다.

뒤틀린 뼈마디를 맞추고, 썩어 들어가던 상처를 치료하고, 결핍된 영양소를 보충 받아 더 이상 신체적인 고통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아팠다.

"무슨 일이야. 졸려서 그래?"

제이슨은 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딕은 어린 아이를 대하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브루스는 방에 없어?"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인다. 딕은 의자에서 일어나, 제이슨의 손을 잡고 자신의 침대로 다가갔다. 깨끗하게 정리된 이불을 들추자, 제이슨은 그 안으로 기어들어가 베개에 머리를 뉘였다.

딕은 방안의 모든 불을 껐지만, 침대 맡의 은은한 등 하나만은 켜두었다. 제이슨은 어둠을 싫어했다.

"제이슨."

딕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제이슨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희미한 빛이 비친 눈동자는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딕은 그의 가슴팍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딕을 빤히 바라보던 제이슨의 손이 천천히 올라와 딕의 손을 잡았다. 그 온기를 느낀 딕은 피식 웃으며 눈을 감았다.

"잘 자. 제이슨."

잠시 뒤에 딕이 눈을 떴을 땐, 제이슨은 그의 손을 잡은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