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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라이/동양풍au] 2017.07.16 롤겜만화 전력 27회 - 불장난

O.A 2017. 8. 27. 22:44

[이슬라이/동양풍au] 2017.07.16 롤겜만화 전력 27회 - 불장난


난 불구경이 제일 재미있어.”


모닥불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큰 감이 있는 모닥불 앞에서, 라이퀴아는 환하게 웃으며 이슬레이를 돌아보았다. 정성을 담아 아름답게 쌓아올린 장작들이 화려하게 불타고 있었다. 그를 시중드는 환관들과 궁녀들은 불이 다른 곳으로 옮겨 붙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며,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어린 두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 따듯하고 예쁘잖아.”

다 타고나면 흉측해.”

장작만 그런 건 아니잖아. 다 그렇지. 뭔들 그러지 않겠어. 모든 건 언젠가는 결국 흉측해져.”


이슬레이는 라이퀴아를 돌아보았다. 이제 열세 살이 된 라이퀴아는, 나이에 맞지 않는 말을 곧잘 내뱉곤 했다. 이슬레이는 그것이 옛 성인의 명언이나, 어떠한 책에서 스치듯 읽어낸 문장을 적당히 흉내 내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끔은 몇 가지 문장이 뒤섞여 엉뚱한 말이 튀어나오기도 했고, 지나치게 추상적이거나 서정적인 말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이슬레이는 라이퀴아의 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자신이 한 말을 자신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해있는 푸른 눈을 보는 것은 늘 재미있었다.


그렇겠지. 아무리 아름다운 것도 결국엔 낡고, 늙어버리니까. 물건이든 사람이든 동물이든.”


이슬레이는 들고 있던 손부채에서 공작 깃털을 하나 뽑아내었다. 라이퀴아가 기르던 애완공작이 늙어죽은 뒤, 아이들은 그 깃털을 뽑아 두 개의 부채를 만들어 나눠가졌다. 라이퀴아는 오늘 아침 부채를 가지고 놀다가 망가트린 참이었다. 이슬레이는 한 쪽만 남은 부채를 마저 망가트리는 일에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화려한 공작 깃털은 라이퀴아의 푸른 눈과 잘 어울렸다. 라이퀴아의 귓가에 공작 깃털을 꽂아준 이슬레이는, 모닥불 안으로 망가진 부채를 던져 넣었다. 라이퀴아는 재가 되어 사라지는 부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슬레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우리 춤추자, 이슬레이!”


이슬레이는 못이기는 척, 내키지 않는 얼굴을 한 채 라이퀴아가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환관과 궁녀들은 아무도 숙인 허리를 펴지 않았으나, 맑은 웃음소리와 애써 어른스러운 척 감정을 절제하는 어린 소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체통을 지키셔야지요, 황자님.”

아하하하.”


라이퀴아는 폴짝거리며 모닥불 주위를 뛰어놀았다. 이슬레이는 바람을 타고 날아와 얼굴에 붙은 검댕을 소매로 닦아주었다. 이슬레이는 예의를 중요시하고 몸가짐에 신경을 썼으나, 라이퀴아에 한해서는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쫓고 쫓기는 술래잡기가 시작되었다. 라이퀴아는 도망치고, 이슬레이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쫓는 체 하며 라이퀴아를 쫓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거리에 라이퀴아는 신이 나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모닥불에 비친 얼굴은 유독 더 발그레해 보였다.

모든 것은 결국 흉측해지겠지. 이슬레이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라이퀴아를 처음 만난 것은 벌써 8년 전의 일이었다. 이슬레이는 이제 열다섯 살이 되었다. 나이를 먹으며 키가 자라고, 눈높이도 달라졌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세상을 보는 눈도 바뀌었다. 그의 세상에선 많은 것이 흉측해지고, 예전보다 좀 더 빨리 싫증이 나고, 의미를 부여할 만큼 가치있는 것은 지극히 적어졌다.

하지만 네가 흉측하거나 지루하게 보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이슬레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라이퀴아의 손목을 낚아챘다. 라이퀴아는 손목이 잡힌 채 비틀거렸고, 두 소년은 끌어안은 채 흙바닥을 뒹굴었다. 환관 하나가 깜짝 놀라 다가오려 했으나, 라이퀴아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웃음을 터트리자 다급하던 몸짓이 잦아들었다.

이슬레이는 재가 섞인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가빠진 숨을 골랐다. 달리느라 열이 오른 몸에 와 닿는 밤바람은, 모닥불의 열기에 데워져 미지근했다. 그러나 네가 함께 있으니 그 뭉근한 열기조자 짜증이 나지 않는다고, 이슬레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바닥에 드러누운 채 라이퀴아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라이퀴아는 종종 황궁의 뒤뜰에 모닥불을 피웠다. 불길이 커지면 커질수록 웃음소리도 높아졌다. 검게 변한 장작이 조금씩 허물어질 즘이면, 그 앞을 뛰어다니며 춤을 췄다. 이슬레이는 그런 라이퀴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장단을 맞추며 함께 뛰어놀곤 했다.

이슬레이는 종종, 작은 마을 하나를 통째로 태우는 상상을 했다. 이런 나무장작 따위가 아니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수백, 수천채의 집을 태우고, 그 안에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과 흔적들을 통째로 불살라버리는 상상을 했다. 이런 모닥불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하고 아름다운 불꽃이 타오를 것이다. 불꽃이라고 지칭할 수도 없을 만큼 강렬한 화마가 혀를 날름거릴 것이다.

그 거대한 화재 앞에서 너는 얼마나 환하게 웃을까. 이슬레이는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보다 더 큰 불 앞에서, 지금보다 더 환하게 웃으며, 지금보다 더 아름답고 사랑스러워질 라이퀴아를 떠올리며 이슬레이는 입가에 조용한 미소를 그렸다.

상상 속의 마을은 언제나 잿가루조차 남는 일 없이 완벽하게 불에 타 사라졌다. 그 상상을 현실로 꺼내지 않는 것은, 이슬레이가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의 조부는 노환으로 인해 큰 병을 앓고 있긴 했으나, 여전히 황제가 아버지라 부르며 따를 만큼 거대한 권력을 쥐고 있었다. 힘없는 부랑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 하나쯤 통째로 태워버린다고 해도, 이슬레이에게 책임을 묻고 벌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의 조부는 기꺼이 이슬레이를 보호하고, 그의 죄를 덮어줄 것이다.

다만 이슬레이는 라이퀴아가 그 거대한 재앙을 견딜 수 없을 만큼 착하고 순하다는 것을 알고있을 따름이었다. 불타는 마을 앞에서 그를 향해 아름답고 환하게 웃는 라이퀴아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상상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일 뿐이었다. 라이퀴아가 웃으며 이슬레이의 손목을 잡아끌 즈음이면, 이슬레이는 실체가 없는 라이퀴아를 무심히 잊어버리고 제 손목을 감싼 온기에 집중했다.

지금보다 더 아름다워질 필요는 없다. 이슬레이에게 라이퀴아는 이미 충분히 아름다웠고, 흥미로웠고, 재미있었고, 사랑스러웠다. 이슬레이는 라이퀴아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자신과 타협했고, 고집을 손쉽게 꺾어버렸다. 좀 더 멋지고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착한 아이의 가면을 쓰는 것도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슬레이는 몸을 일으키려는 라이퀴아의 어깨를 붙잡고 끌어당겼다. 두 소년은 끌어안고 흙바닥을 한 바퀴 더 굴러버렸다. 라이퀴아는 이슬레이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한 번 웃음을 터트렸다.